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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는 ‘50대’ ‘남성’이 과다 대표된 게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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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치는 ‘50대’ ‘남성’이 과다 대표된 게 문제죠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을 찾다(상)



“안녕하세요, 녹색당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 신지예입니다!” 5월 8일(화) 서울시장 후보인 녹생당의 신지예 후보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연설을 시작한 곳은 한국기독교연합회관 앞이다. 10일(목)에는 광화문 대한감리교본부 앞에서, 13일(일)에는 여의도 순복음교회 앞에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동성결혼을 법제화하고, 인권조례를 강화하라”고 외쳤다.


참정권이 손에 쥐어진 이후로,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가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합회)에 가서 인사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그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며 정당연설회를 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어떻게 이렇게 대담하지?’ 라는 감탄도 나왔다.


▶ 여의도 순복음교회 맞은 편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을 외치며 정당연설회 중인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후보 캠프 제공 사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는 이름의 선거 사무실을 연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는 여러 모로 주목할 만하다. 여성 당원의 비율이 약 55%를 차지하는 녹색당의 여성청년 후보로서, 페미니즘 정치와 청년 정치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6.13 전국지방선거를 앞두고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신지예 후보와, 녹색당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을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두 분이 녹색당과 어떻게 인연을 맺어 정치활동을 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이 궁금합니다.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 “사실 청소년 시절부터 당적을 가지고 싶었어요.(웃음) 외국에서는 청소년들이 선거 캠프에서도 일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거 보면 재미있어 보였는데 막상 마음에 드는 정당이 없었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녹색당이라는 게 있다는 얘길 듣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강령을 읽었어요. 거기에 ‘작은 도토리 하나가 만드는 떡갈나무 혁명’이라는 말이 있었죠. ‘정치가 문학적일 수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가치에 너무 공감 돼서 바로 온라인으로 가입했어요.”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저도 청소년 때부터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두발자유운동을 시작했고, 당시에 민주노동당에 가입하기도 했어요. 청소년위원회를 만들려하다가 무산된 적도 있고요. 그 뒤론 당적이 없었는데, 녹색당이라는 게 만들어졌다는 얘길 듣고 행사 부스에 찾아갔어요. 리플릿에 나와 있는 강령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정당정치가 당원들의 민주주의와 얼마나 괴리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했었기 때문에 녹색당의 ‘전면추첨제 대의원제도’가 특히 마음에 들어서 가입하게 되었죠.”


▶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선거사무실 (후보 캠프 제공 사진)


-신지예 후보 캠프 사무실 이름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죠. 요즘 녹색당이 낙태죄 폐지 등 성평등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고요. 하지만 여전히 ‘녹색당’ 하면 탈핵 등 환경 이슈가 먼저 떠올라요. 최근 녹색당의 행보를 두고 ‘페미니즘 흐름에 편승하는 것 아닌가’ 하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시각도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김주온: “녹색당이 만들어진 계기 중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가 컸던 건 맞아요. 해외 녹색당을 봐도 반핵, 평화운동이 그 시작이었죠. 하지만 그 운동의 핵심엔 여성들이 있었고 페미니즘 이슈를 늘 이야기해왔어요. 전 세계 녹색당은 공통적으로 하나의 정책으로서가 아니라 활동의 원리로서 성평등과 다양성 존중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당헌에 ‘당의 모든 대의기관 및 위원회 구성 시에 여성 비율이 50% 이상이 되도록 한다’는 원칙이 있고요. 지난 총선 때도 ‘성평등 정책’을 꾸준히 말해왔어요.”


-정치할당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올해 여성운동계에서 ‘성평등 개헌’과 여성할당제를 강력하게 요구했지만 오히려 지방선거 후보자 중에 여성을 찾기 매우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왜 여성후보를 내지 않느냐’는 질문엔 ‘공천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답이 반복적으로 나오죠. 좀처럼 여성정치인을 키우지 않는 한국의 정치환경 속에서 녹색당은 할당제 외에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김주온:  “당내 평등한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함께 모여서 대화하면서 모든 사람이 서로 동등한 존재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거죠. 회의를 할 때도 특정 성별의 사람이 발언권을 너무 오래 쥐고 있지 못하게 하는 등의 세세한 규칙을 정하기도 하고요. 현재 여성들이 가진 정치적 제약 사항을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역량을 기르는 것 그리고 그런 장을 제공함으로써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는 거죠.”


신지예: “전 여남동수제가 아닌 할당제는 크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공천이라는 제도 안에서 누군가를 간택하는 시스템이라면, 여성을 할당한다고 하더라도 남녀 간의 위계 권력의 구조가 깨지지 않아요. 후보로 나서기 위해 줄을 설 수 밖에 없는 상황은 그 위의 권력에 대항해서 싸울 수 없도록 만들죠. 결과적으로 위계적인 정당 안에 흡수되는 셈이에요. 이제는 여성들이 공천을 얼마나 받느냐가 아니라,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여성정치인들이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공천제를 부수는데 목소리 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발굴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 성장할 수 있고, 스스로 지지 받을 수 있게 하는 구조와 문화가 녹색당에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큰 버팀목이었어요.”


▶ 2018년 전국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녹색당 후보들 중 여성 비율은 50%를 넘는다. ⓒ녹색당


-‘여성’정치인도 보기 힘들지만 ‘청년’정치인도 찾아보기 어렵죠. 왜 한국 사회에서 청년정치인을 보기 힘든 거라고 생각하세요?


김주온: “가장 큰 문제는 기탁금이 아닐까요. 서울시장의 경우 후보로 등록하기 위해 내야 하는 기탁금이 5천만 원이에요. 세계적으로 봤을 때도 굉장히 높은 거예요. 몇 십 만원인 나라도 있는데, 일본과 한국이 굉장히 높은 편이에요.”


※참고로 일본도 여성정치인 비율이 굉장히 낮은 국가(세계 약 190개국 중 한국은 121위, 일본은 140위)로, 한국과 어깨를 견준다. (참고기사: 우리에겐 더 많은 여성정치인이 필요하다 http://ildaro.com/8153)


김주온: “그러니까 경제적 자원이 마련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를 자신의 직업이나 미래로 고민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에요. 또 정치 활동을 위해선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는데 학업이나 취업 준비를 하면서 겸하기 어렵기도 하죠. 저도 지난 총선 때 녹색당 비례대표로 출마 했을 때 학생이었는데, 휴학을 했어요.


당시에 ‘기본소득 활동가’ 정체성이 커서 선거가 ‘기본소득’ 의제를 알리는 중요한 기회라고 생각했고 1천5백만원이라는 기탁금을 녹색당에서 함께 부담해줬으니까 출마할 수 있었지 아님 못했을 거에요. 녹색당에선 고액 기탁금에 대한 문제 제기를 꾸준히 하고 있지만 지금 상황에선 그 기탁금을 어쨌든 내야 하니까, 그건 당에서 함께 부담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죠. 이 ‘고액 기탁금’ 문제에 대해 대중들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기탁금 마련을 위한 ‘만원 캠페인’도 진행하고 있고요. 많은 분들이 관심 가지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개소식’에서 발언 중인 녹색당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 (출처: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캠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여성 청년이 무슨 정치를 할 수 있냐?’ 하는 편견을 가진 것 같습니다. 이런 인식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요?


신지예:  “저는 더 많은 여성들과 더 많은 청년들이 정치인으로 나와야 그런 인식을 깰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의 정치적 한계를 부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면서 계속 나와야 할 것 같아요. 한국에선 여성이나 청년 정치인이 나오면 ‘여성이니까 공천 받았구나. 청년이니까 공천 받아 나왔겠지’ 그런 편견과 한계를 지니고 정치인을 바라보는데, 그건 가부장적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지금 한국은 ‘특정 세대가 과다 대표’되어 국회와 의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죠. 이번 국회에 20대 의원은 없고 30대 의원 1명, 역대 최고령이에요, 평균 55.5세. 그런 분들이 정말 장기적인 정책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오히려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주온: “외부의 시선을 바꾸는 건 중요한 과제죠. 진짜 수가 많아져야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정당에서 청년 정치인 자리 한두 개 만들어 주는 게 고작이니까. 그 자리의 사람이 청년 혹은 여성을 모두 대표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애초에 너무 자리가 적기 때문에 문제인 거죠. 수가 많아지는 건 중요해요. 그래야 ‘여성 혹은 청년’으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서 정치를 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신지예 후보도, 저도 여성청년이지만 각자 관심 가지고 있는 정책들은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이 개인이 어떤 정책에 관심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지점까지 안 가요. 그냥 ‘너는 여성청년 정치인이니까’라고밖에 생각하지 않는 거죠.


다양성에 대한 정치적 상상력이 협소해요. 다른 나라 녹색당의 경우를 보면 청소년 때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10대 초반부터 당비를 내고 활동을 하는 거죠. 그럼 20대 초반이 되었을 때 벌써 정치활동 경력이 10년인 거예요. 정책에 대한 정보와 그걸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훈련이 된 거죠. 그러니까 20대 초반이라고 하더라도 그 사람은 베테랑 정치인일 수 있는 거에요. 한국처럼 30, 40년 동안 다른 일 하다가 ‘정치도 한번 해 볼까?’ 하면서 마치 인생의 권력 정점을 찍는 느낌으로 하는 게 아니라요. 어렸을 때부터 정치 참여를 독려하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게 하면, 결국 그렇게 성장한 정치인들이 사회와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거예요.”


-녹색당 안에서도 ‘페미니즘’이나 ‘성평등’ 이슈를 낯설거나 불편하게 느끼는 당원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들과 어떻게 소통하나요?


김주온: “꼭 페미니즘에 대해서만 불편해 하는 건 아니죠. 동물권이나 탈핵이나, 자신이 몰랐던 주제를 녹색당에서 만나기도 하죠. 사실 녹색당의 의제들이 결국엔 다 연결되어 있어요. 탈성장을 이야기할 때, 한국 사회에서 오랫동안 개발독재 시기를 거치면서 여성노동자들이 희생되었고 가정 내에서 여성들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남자형제들 뒷바라지를 해왔다는 사실도 이야기하게 되고, 그렇게 보면 다 연결되어 있어요.


녹색당에서 말하는 생태주의와 탈성장, 이런 가치들은 결국 위계 관계에서 이게 더 중요하고 이건 덜 중요하다고 구분지어 나누는 게 아니라, 그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는 거예요. 그게 곧 페미니즘의 중요한 가치랑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는 어떤 용어들이 낯설게 느껴질 순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물질적인 가치,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만 위해 달려가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여성들, 소수자, 자연과 동물들이 희생되어 온 걸 이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것, 사회가 재생산의 문제를 여성에게만 떠미는 문제도 개발주의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같이 이야기하면 소통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 녹색당에서 만든 ‘성평등한 선거운동 가이드 포스터’


-이번 지방선거를 위해서 ‘성평등한 선거운동 가이드’을 만들고 발표한 것으로 압니다. ‘선거운동이 모두에게 해방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주온: “2014년 지방선거와 2016년 총선에서 선거운동을 거치면서 당 내 여성후보들과 여성당원들이 제안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어요. 선거라는 게 ‘당선’이 중요하긴 하지만 과연 녹색당이 다른 정당과 ‘다른 선거’를 준비한다는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죠. 안희정 전 충남 지사 대선 캠프에서 ‘우리는 대통령 만드는 캠프다’라는 명목 하에, 내부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를 묵살했다는 보도가 나왔었잖아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소수자라고 의견이 묵살 당하는 일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존중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선거운동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신지예: “선거운동은 사람을 굉장히 정신이 없는 상황에 놓이게 만들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선 누구라도 실수를 할 수 있고, 이성적으로 행동하기 힘들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위험한 상황이 올 때마다 지표가 될 수 있는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녹색당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문턱이 굉장히 낮은 조직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또 그만큼 누구나 어떤 위치를 가질 수도 있고 그에 따라 권력을 잘못 쓸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조직이 될 순 없더라도 철저한 가이드라인은 필요한 것 같아요.”


김주온: “녹색당에선 어떤 행사나 모임을 할 때마다 함께 ‘평등문화 약속문’을 읽어요. 그것만 읽는다고 다 지켜지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 공동의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인식하고 끊임없이 연습과 훈련을 하는 거죠. 녹색당 내에서도 여러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더 많이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성평등한 선거운동 가이드라인은 이번 선거가 끝난 후에도 당원들 의견을 수렴해서 내용을 보강할 예정이에요.” (※ 인터뷰 기사 하 편에서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비전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페미니스트 시장이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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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시장이 있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사무실을 찾다(하)


여성 정치와 청년 정치, 페미니즘과 정당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장 후보가 왜 선거사무실을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고 이름 붙였는지 이해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그가 꿈꾸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는 뭘까?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 되겠다는 선언과 함께 이번 지방선거에 뛰어든 그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았다. 녹색당의 페미니스트들이 서로에게 가지는 연대감과 그들이 꿈꾸는 정치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 인터뷰 중인 녹색당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과 신지예 서울시장 예비후보. (신지예 후보 캠프 제공 사진)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제가 출마한다고 보도가 되었을 때 기사 댓글들이 뭐였냐 하면 ‘애도 안 키워보고, 결혼도 안 해본 그런 여자가 어떻게 정치를 할 수 있겠냐. 스물여덟 살이면 학자금 대출 갚을 나이인데 사회생활은 해봤겠냐’였어요. 이것도 여성과 청년에 대한 편견이죠. 청년들도 살면서 생애적으로 만들어 낸 경험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전 오히려 한국 사회에서 오래된 문제들, 10년이 넘게 해결이 안 되는 ‘차별금지법 제정’,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문제’, ‘주택 계약갱신 청구권 논의와 표준임대료 제도’, ‘부의 재분배’, ‘성평등’ 문제 등이 이제 변화해야 할 때라고 봐요.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범위나 정치 패러다임 안에서 대안을 찾는 게 아니라,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점에서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 사건이 발생한지 2년이나 지났고, 여성들이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목소리를 쏟아내는 2018년이 되었음에도 페미니즘을 내 건 정치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문제이지 않나요?”


-신지예가 만드는 서울시는 무엇이 가장 다를까요?


신지예:“제 공약 중에 ‘동반자 등록 조례’와 ‘다양한 가구 구성원에 따른 주택 공급’이 있어요. 지금 서울시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걸 보면 분류가 크게 2가지에요. 하나는 신혼부부, 하나는 청년. 청년들이 취업할 때까지 도와주고 취업한 뒤에는 결혼해라, 그럼 또 돕겠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서울을 구성하고 있는 시민들의 삶은 정말 다양하잖아요. 신혼부부나 청년뿐만 아니라 비혼인 사람들도 있고 형제 자매랑 살거나 친구끼리 살거나 또 동성 커플도 있고요. 그런데 시 정책은 ‘정상 가구’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살도록 안내하고 인도하고 압박하고 있어요. 저는 시민의 삶을 시 정책에 끼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시 정책이 시민의 삶에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서울시장이 된다면, 모두가 자기 존재 그대로 살 수 있게 할 거에요.


그리고 안전한 서울! 성소수자들도 그렇고, 여성들도 요즘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순간 안전에 위협을 받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한 안전망이 부서지고 있는 상황인거죠. 혐오와 차별을 계속 양산해 내고 있는 세력을 정치적으로 어떻게 막을 것 인지 고민하는 정치인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사무실 ⓒ일다(박주연)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으로서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신지예: “임기 첫날 서울시민인권헌장을 공표하는 거요. 그 헌장은 많은 시민들이 전문가가 함께 공동으로 만들어낸 훌륭한 인권헌장임에도 불구하고, 혐오세력의 반대에 굴복해서 결국 폐기되었어요. 그걸 다시 선언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성들의 건강을 돌보는 ‘젠더건강센터’를 설치하고 여성들의 인공임신중지 결정을 지원해주는 일을 반드시 해내고 싶습니다. 사실 전문가 분들이 저한테 ‘낙태죄를 없애지 않고서는 서울시 공공시설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불가능하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하지만 전 그렇게 때문에 그걸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법제도에서 되지 않는 일을 나서고 바꾸기 위해 정치라는 영역이 있는 거고, 정치인은 자신의 입과 권력으로 그걸 해결해주기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예전에 광화문의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에 천막을 지원하는 일과 관련해서 ‘왜 그걸 허용하냐, 불법이다’라는 논란이 있었을 때, 박원순 서울시장이 “나를 잡아가라”고 했었죠. 그게 정치인이 하는 일인 거죠.


하고 싶은 일 또 있는데, 다 이야기해도 되나요?(웃음) 성평등하지 않는 기관이나 단체에는 서울시 예산을 1원도 안 쓸 예정이에요. 성폭력 사건에 대한 대응 체계도 만들고, 서울시 4급 공무원 이상 여남동수제를 실시할 거예요. 9급 공무원 합격자 비율을 보면 여성이 더 높은데 올라갈수록 여성 비율이 줄어든다는 거 이상하잖아요. 유리천장을 깨야죠.”


-사실 지금 지지율이 높지 않잖아요. 정말 당선을 꿈꾸나요? 이번 선거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요?


신지예: 북미정상회담 건으로 정치적인 관심사가 쏠려있고,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드루킹 사건’으로 논쟁하기 바쁘고. 이번 지방선거는 정말 쟁점 없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서울시는 박원순 시장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죠. 저는 상대적으로 그 틈에서 녹색당의 이름으로, 페미니스트의 이름으로 성평등하지 않은 문화와 그 적폐에 대해 이야기하고 페미니즘 이슈를 더 많이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또 그래야 하고요. 더 이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만으로 남을 수 없잖아요. 이제는 현실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시민들이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실현을 위한 방법을 생각하거나, 젠더건강센터라든지 여남동수제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고 ‘정말 페미니스트 시장이 있다면 어떤 사회가 될까?’라는 기대를 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저의 역할인 것 같아요. 사실 전 5% 넘는 게 목표에요. 서울시민 100명 중 5명이 페미니스트 시장을 소망하면서 저를 지지해주신다면 서울시에도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사표 걱정 없이 녹색당을 뽑아주시면 좋겠습니다.(웃음)”


-‘사표론’이 또 등장할지 모르잖아요. 군소정당에게는 굉장히 압박이 될 수밖에 없는데, ‘내 표가 사표가 될까봐’ 걱정하는 분들에게 왜 녹색당 후보를 선택해야 하는지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당선이 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만 투표하는 것이 선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녹색당을 선택했다는 것, 그리고 녹색당을 선택한 사람들이 어느 정도 되는가가 우리 정치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지표가 아닐까요? 지금의 정치가 아니라 전혀 다른 정치를 꿈꾸고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만큼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자신의 지역구와 단체장 후보들의 공약을 한번 살펴보셨으면 좋겠어요. 무분별한 개발 공약이 얼마나 심각한지, 혐오와 차별에 동조하거나 이를 양산하는 건 없는지, 그들의 메시지를 점검하고 녹색당의 정책도 꼭 살펴봐주세요!”


▶ 경찰청 앞에서 ‘동일범죄 동일수사’를 외치며 경찰이 성차별적인 수사를 하고 있다는 기자회견 중인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신지예 후보 캠프 제공 사진)


-선거운동을 위해 본인이 세운 원칙 같은 게 있나요? 


신지예: “캠프 내 조직 인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선거가 다가올수록 구성원들의 스트레스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에게 폭력적이 되거나 넘지 않아야 되는 선을 넘지 말자고 계속 상기시키고 있죠. 그리고 돈이 없기 때문에 다양한 선거운동 방식을 모색하려고 해요. 페미니스트 유토피아에 대해 상상하듯이 말이죠.”


-김주온 공동운영위원장은 현재 녹색당을 이끄는 사람 중 한 명이고, 신지예 후보도 서울시당 공동운영위원장이잖아요. 두 분이 생각하는 리더십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신지예: “한국 사회에서는 리더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망이 ‘제왕적’인 것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리더는 나이가 가장 많아야 하고, 경험이 가장 많아야 하고, 아래에 있는 사람들을 선도하여 앞장선다’는 게 리더에 대한 고정관념이죠. 저는 그게 민주주의 사회와는 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해요. 리더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이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자신에게 없는 부분들을 채워줄 수 있는 행정조직을 만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김주온: “리더십에 대해 많이 고민했었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요. 당 내에서 제가 카리스마가 없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고, 반대로 강한 리더십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요구하는 분들도 있어요. 저도 리더의 자질로, 자신에게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녹색당 운영위원장은 ‘대표’와는 좀 달라요. 일종의 퍼실리테이터(진행촉진자)에 더 가깝죠. 제가 무언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함께 논의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기도 하고, 그래서 답답한 부분도 있지만 그게 녹색당의 문화예요. 운영위원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자리였다면 애초에 출마하지 않았을 거에요.(웃음)”


-세부적인 관심사가 다르더라도 ‘여성 청년’이라는 위치로 당 활동을 하고 있어서, 두 분의 연대의식도 좀 각별할 것 같네요.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신지예: ”녹색당 내에 여성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자매애가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동질감과 유대 같은 거죠. 주온님은 처음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굉장히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어요. 당 내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고, 또래나 친구로서가 아니라 녹색당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많이 의지가 됩니다.”


김주온: “전 지예님이 아니었으면 운영위원장으로 출마하지 못 했을 것 같아요. 지예님이 서울운영위원장에 출마한다고 해서 저도 할 수 있었던 거죠. 지난 총선 때 같이 비례후보로 나왔을 때도 전국을 돌며 토론회를 할 때 지예님한테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그 때 여성청년 후보가 한 명이었다면, 그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여성청년 후보가 말하는 구나’로 보였을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에겐 서로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지예님의 정치적 의제들과 저의 정치적 의제가 각각 보일 수 있었던 거죠. 그냥 여성청년 후보가 아니라 ‘신지예’라는 후보, ‘김주온’이라는 후보가 보일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죠. 이번 선거도 부담이 되었을텐데 출마하겠다고 해줘서 너무 고마웠어요.”


▶ 녹색당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의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사무실 ⓒ일다(박주연)


-두 사람이 꿈꾸는 녹색당의 성장과 미래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당 활동을 통해 꼭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신지예: “제가 꿈꾸는 정치가 있어요. 과반수가 넘는 정당이 없고 최소 7개의 정당이 있는 다당제 사회요. 다양성이 있는 국회를 만들어 내는데 녹색당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10년 넘게 바뀌지 않는 정책들을 바꾸고, 사회를 뒤흔드는 정당으로 활동하는 게 목표에요.”


김주온: “녹색당이 수적으로 다수가 되거나 국회의 과반을 차지하거나 하는 건 녹색당이 원하는 목표는 아니에요. 진짜 변화를 이끌어내는 게 목표죠. ‘탈핵, 기본소득, 성평등’ 등의 다양한 이슈들을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어요. 정치는 ‘선거 때 투표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어요. ‘선거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지역 사회에 참여하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녹색당이 던지고 있고, 그걸 계속해서 말해야겠죠. 국회나 의회에 의석이 생기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질 거예요. 많은 분들이 주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치를 해 볼까? 정치에 참여해 볼까?’라는 생각을 하기 힘든 사회를 살고 있는 여성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주온: “정치가 엄청 거창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나의 입장과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들리게 하는 것이죠. 가족, 학교, 직장에서 내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게 하는 거고, 그걸 혼자는 할 수 없으니까 모여서 하는 게 정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당에 참여해서 목소리를 내는 게,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드는 길인 것 같아요.”


신지예: “기존 정치가 소수자를 향해서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는 걸 이제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성평등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 ‘기본소득, 여성할당제, 여남동수제’ 등 논의할 게 너무 많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압박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정치 영역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해야 하는 정당이 분명히 있어야 하고요, 그 정당이 제대로 운영되도록 가입하고 지지하고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주온: “한국에선 정당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서 사람들에게 정치의 문턱이 높아요.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드는 일이 좀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어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여성 청년들, 페미니스트들의 정치 참여에 걸림돌이 되기도 하죠.


신지예: “기존 권력이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 충분히 폭력적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정치혐오를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권력을 가지고 있는 소수가 그 권력을 계속 갖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들의 정치를 정말 부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같이 대안정치를 모색했으면 좋겠어요.”


김주온:“이 정치를 그대로 둔다면 기존의 기득권층에 유리할 수밖에 없잖아요.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우린 더 뒤로 가게 될 거에요. 많은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하길 바래요. 정치에 참여하세요!”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푸쉬업(Push-Up)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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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쉬업(Push-Up)을 하자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코어에게 기회를!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몸의 중심과 변방


전력 질주하는 스프린터의 모습을 상상해보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마 기관차처럼 성큼성큼 움직이는 다리와 역동적이고 크게 움직이는 팔이 떠오를 것이다. 백조의 호수를 연기하는 발레리나를 상상하면, 발끝으로 서서 한 다리를 곧게 뻗어 올리고 손끝에서부터 목과 어깨를 따라 이어지는 우아한 선이 떠오를 것이다.


어떤 움직임을 인식할 때 우리는 흔히 중심부보다 중심에서 먼 바깥쪽에 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중심이 중요하다.


우선, 몸은 하나다. 해부학적으로 뭐라 불러야 하니까 지어낸 근육과 뼈, 결합조직의 이름들이 있을 뿐 실제 살아있는 몸은 하나다. 오직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창조물이나 마징가Z같은 ‘인조인간 로보트’만 부분들의 조합물이다.


둘째, 몸의 중심부, 한 단어로 말해서 코어, 두 단어로 말해서 몸통과 골반, 구역으로 나누면 가슴 아래부터 허벅지 윗부분까지, 많은 사람들의 경우 이 코어가 실업 상태에 가깝다. 존 레논의 노래 “Give Peace A Chance”에 비유하면 “Give Core A Chance”가 필요하다.


코어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 너무 많은 기회들을 허벅지, 허리, 목, 팔, 무릎, 종아리, 손목, 발목이 가로채고 있다. 그렇지만 허벅지, 허리, 목, 팔, 무릎, 종아리, 손목, 발목은 죄가 없다. 코어가 일할 기회를 잃은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조건 탓이지 손목이나 발목이 스스로 나서서 빼앗은 게 아니다. 그러니 코어는 잠자고 있다는 표현도 적절할 것이다.


코어와 안정성


건강한 움직임에는 좋은 가동성(mobility)과 좋은 안정성(stability)이 필요하다. 가동성이 먼저 확보돼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자유가 없는 안정은 진짜가 아니다. 반대로 진정한 안정성 없이는 가동성도 제약되거나 훼손될 수 있다. 자유와 안정의 관계란 원래 그렇지 않은가.


코어는 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 진정한 안정성은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타이밍 좋게 순식간에 부드러움에서 단단함으로 다시 부드러움으로 갈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정성은 자세를 유지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능력이다.


앞에서 우리가 상상했던 스프린터나 발레리나 모두 진정한 안정성을 가졌기 때문에 역동적인 움직임과 우아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다.


안정성은 중력 환경에서 직립 보행하는 동물의 생존에 매우 중요하다. 현대인의 생활방식에서는 안정성이 부족해지기 쉽다. 안정성이 부실하면 활력이 떨어지고, 척추질환에 취약해진다. 역동적인 활동을 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다.


푸쉬업의 기본 자세와 나쁜 자세


제대로 한다면 푸쉬업은 간편하고 좋은 코어운동이다. 그리고 위험상황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푸쉬업을 못한다면, 벽 푸쉬업 또는 도움 받는 푸쉬업을 해보자. 푸쉬업을 할 수 있다면, 좋은 자세로 진정한 안정성을 발휘하고 있는지 확인해보자.


▶ 대표적인 나쁜 푸쉬업 자세 3가지 ⓒ스쿨오브무브먼트


먼저 푸쉬업을 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나쁜 자세 세 가지가 있다. 다음의 세 가지를 하지 말자.


①얼굴 혼자 바닥과 가까워진다.

②팔꿈치를 옆으로 벌린다. 

③엉덩이가 뒤로 위로 빠진다.


푸쉬업은 좋은 자세로 정확히 하는 게 중요하다. 다음의 세 가지가 기본 사항이다.


①기본은 손을 어깨 너비로 벌린다. 손을 어깨 너비보다 좁게 벌리면 어깨와 가슴이 웅크러지기 쉽고, 반대로 넓게 벌리면 팔꿈치가 옆으로 벌려져 자세가 나빠지기 쉽다. 티셔츠 치수가 제대로 맞는 경우, 티셔츠의 어깨 봉제선이 검지와 엄지 사이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게 어깨 너비다.


손바닥을 바닥에 댈 경우 손가락들을 활짝 펴고 보통 중지 끝이 정면을 향하거나 약간 바깥쪽을 향한다. 주먹 쥐고 할 때는 엄지까지 모든 손가락을 움켜쥐어야 한다. 엄지를 펴서 바닥에 받치지 않는다. 검지와 중지의 너클파트만 바닥에 닿아야 하고, 바닥을 밀어내야 한다. 손목이 안팎으로 구부러지지 않고 전완과 일직선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②어깨를 귀에서 가장 멀리 내린다. 겨드랑이를 조인다. 겨드랑이에 탄탄한 힘이 들어가야 한다. 팔이나 어깨, 가슴이 아니라 겨드랑이가 바닥을 밀어내야 한다. 이것이 가장 기본이다. 팔꿈치는 옆쪽이 아니라 뒤쪽 즉 발쪽을 향해 구부러졌다 펴져야 한다.


③발은 골반 너비로 벌려서 열 발가락을 펼쳐 바닥을 딛는다. 발뒤꿈치를 뒤로 미는 느낌을 갖는다. 골반을 당당하게 펼친다. 골반이 주인인 인간처럼 골반을 중심으로 몸이 X로 연결된 채 바닥과 가까워지고 멀어진다. 몸통과 골반이 탄탄히 연결돼 푸쉬업 움직임의 주인이 돼야 한다. 푸쉬업의 주인공은 몸통과 골반이다. 


자세의 모양을 도식적으로 설명하면 첫째, 겨드랑이가 조여지고 둘째, 복부가 짧아져서 힘을 쓰고 셋째, 골반을 당당하게 펼친다. 뒤쪽에서 보이는 대로 말하자면, 꼬리뼈를 배꼽방향으로 끌어올린 모양새다.


푸쉬업 방법 세 가지


자신의 상황과 몸 상태에 맞는 방법을 선택한다. 약간은 도전적이지만, 좋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


1. 벽 푸쉬업


벽이 아니라 책상에 손을 대고 할 수도 있다. 큰 계단을 이용하면 단계적으로 연습하기 가장 좋다. 실력이 좋아지는 만큼 손을 아래 계단으로 내리면 되기 때문이다. 금세 실력이 늘진 않을 것이다. 꾸준함이 필요하다.


▶ 벽 푸쉬업, 계단 푸쉬업  ⓒ스쿨오브무브먼트


2. 도움 받는 푸쉬업


흉골과 복부 밑에 블록을 놓는다. 블록의 높이나 위치를 조정해 난도를 조절할 수 있다. 블록 위에서 쉬었다 올라올 수도 있고, 내려가는 구간은 수동적으로 툭 내려가고 올라가는 구간만 힘쓰는데 집중할 수도 있다.


▶ 도움 받는 푸쉬업  ⓒ스쿨오브무브먼트


3. 푸쉬업


한번을 하더라도 좋은 자세로 하는 게 중요하다. 오류를 계속 입력하지 말자. 몸은 기계와 달라서 평생을 버틸 수도 있지만 오류를 넣으면 오류가 나온다. 즉 나쁜 움직임 패턴이 강화될 것이다. 자세가 나빠지고 있다면, 멈추고, 쉬고, 점검하자.


▶ 푸쉬업  ⓒ스쿨오브무브먼트


기본은 5회 단위로 나눠서 하는 것이다. 그 정도가 자세에 집중하기 좋기 때문이다. 보통 5회 10세트로 시작한다. 세트 사이 쉬는 시간에는 무릎을 꿇고 양팔을 좌우 위아래로 흔드는 적극적 휴식을 한다. 하루 빡세게 하고 다음날 “아이고, 근육통이야…”하는 방식으로 하지 않는다. 목표는 실질적으로 운동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지 근육을 키우는 것이 아니다. 닭들의 가슴살을 복용할 필요도 없다. 마치 영어 실력 늘리기처럼 자주 연습할수록 좋다. 점진적으로 이룰 목표는 거의 매일 푸쉬업을 가뿐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 푸쉬업 설명 영상으로 보기https://bit.ly/2saBBMa



폴란드라는 거울: 임신중단금지법 철회시킨 여성들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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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시위’ 승리 이후, 폴란드 페미니즘도 부활했다

임신중단금지법안 철회시킨 풀뿌리 여성들의 힘



지난 24일 헌법재판소에서 ‘낙태죄’ 위헌 소원 공개 변론이 열렸다. 한국에서 6년 만에 ‘낙태죄’가 다시 심판대에 오른 상황에서, 인구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인 아일랜드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 조항을 폐지하기로 했다는 고무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2016년, ‘검은 시위’라 불리며 전국의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임신중단금지법안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던 폴란드는 결국 해당 법안을 철회시켰다. 이 시위는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한국에서도 대규모 검은 시위가 벌어졌다. 획기적인 성공을 거둔 폴란드 여성들의 운동에 대해, 당시 시위에 적극 참여한 셈초넥 마르타 씨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검은 시위 참가자들. 왼쪽 끝이 셈초넥 마르타 씨다. 피켓에는 ‘여성을 구하라’라고 적혀 있다. (제공: 셈초넥 마르타)


-폴란드에서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임신중단금지법안에 항의하며 집회를 열었습니다. 어떻게 전국적으로 이런 시위가 일어날 수 있었나요?


“우선 집회의 경위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016년 10월 하순, 임신중단에 관한 두 개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습니다. 하나는 임신 12주까지 중절수술을 합법화하고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임신중단 규제완화 법안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당이 제출한 규제강화 법안이었습니다. 후자는 임신중단을 전면 금지할 뿐 아니라 해당 여성에게 무거운 형벌을 내리는 엄격한 법안이었습니다.


상하원 모두 과반수를 점하는 현재의 여당인 PiS(법과 정의)당은 만들고 싶은 법안이 있으면 국회에서 논의도 제대로 하지 않고, 관계자 자문도 얻지 않고, 법안 채택을 강행한 전례가 몇 번이나 있었습니다. 임신중단금지법안도 그렇게 될 것으로 예측이 되었기 때문에 여성들의 불안과 공포,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이때 유명한 배우 크리스티나 얀다 씨가 SNS에 쓴 글이 주목을 받았는데요.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에서 이뤄진 여성파업(전국의 여성들이 하루 동안 일, 가사, 육아를 하지 않음)에 대해 쓴 것이었죠. 우리 폴란드 여성들도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아이디어가 급격히 확산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막 소식을 접하게 된, 집회에 참여해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서로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시위가 추진되었죠. 돈을 모금해 포스터와 전단지를 인쇄하고, 전국에서 관련 행사와 활동이 조직되기 시작했습니다. 법안이 제출되기 전인 2016년 10월 3일에 마침내 폴란드 여성 집회가 실현되었습니다.


법안이 도입된다는 소식을 듣고 줄곧 혼자서 공포와 분노, 절망에 빠져있던 제가 그 집회에서 얼마나 힘을 얻었는지,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시위 참가자 중에는 집회 베테랑도 있고, 저 같은 초보자도 많았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성적인 이슈, 그 중에서도 임신중단이나 피임에 대해서는 일상적인 대화에서 금기시되어 있어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소극적인 여성들도 거리로 나와 큰 목소리로 성적 권리를 요구했습니다. 굉장히 해방된 분위기였죠. 의식을 바꾸는 경험이었습니다. 국내 150곳뿐 아니라 해외로까지 퍼져 대성공이었습니다.”


▶ 20만 명 이상의 여성들이 참여한 폴란드의 임신중단금지법안 반대집회. ⓒAgencja Gazeta 2016년 10월 3일, 인구 40만의 도시 슈체친


-획기적인 일이었네죠. 애당초 여당(PiS)는 왜 임신중단금지법안을 통과시키려 한 것이죠?


“폴란드에 많은 신자가 있는 가톨릭에서는 원리적으로 ‘낙태는 살인’이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임신중단을 ‘어린이 살인’이라고 부르고 ‘태아’를 ‘잉태된 아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어린이’라고 부르는 등 감각이 없는 세포 덩어리를 어린아이 같은 이미지로 칭하죠. ‘사람의 목숨은 정자와 난자가 수정된 시점에 시작한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성당 미사의 설교에 나올법한 표현이 국회나 언론에도 종종 나타나 일반 사회에 침입하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이 정부는 전통적인 가족구성과 가치관을 중시하고 가정 내 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소극적입니다. 특히 강간 범죄에 엄격하지 않아서 재판에서는 대부분 집행유예에 그쳐 실제 처벌이 이뤄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게다가 임신중단규제를 강화하려고 하면서 성교육, 그 중에서도 피임교육을 하지 않습니다. 의무교육에 포함된 가톨릭 수업에서는 요즘 ‘피임은 안 된되’ ‘중절은 살인이다’ 등 여성들이 아이를 낳는 선택지밖에 갖지 못하도록 움직이고 있어, 국민들의 여론을 무시합니다.”


-여성들의 대규모 집회로 법안이 부결된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이후 어떤 변화가 감지되고 있나요?


“이번 집회의 훌륭한 점은 여러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일반의, 게다가 정치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던 여성들까지 들고 일어난 풀뿌리 운동이라는 점이죠. 우리 안에 얼마나 큰 힘이 내재되어 있는지, 여성들도 정치권도 정부도 통감했습니다.


또한, PiS당이 정권을 잡은 후부터는 헌법재판 개악 등에 대해 몇 번이고 국민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었지만 한 번도 저지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성공한 것입니다.


검은 시위에서는 다양한 조직들과 운동들의 협력이 이뤄졌습니다. 집회의 노하우가 있는 조직은 그 정보를 나누고, 스피커를 빌려주는 등 여러모로 협력했습니다. 폭력 행사가 없는 평화로운 집회로 폭넓은 지지를 얻었죠. 많은 가게와 회사들이 여성들을 지지하며, 집회 참여를 희망하는 여성들이 하루 일을 쉴 수 있게 해주고, 가게 문을 닫는 곳도 많았습니다.


폴란드의 움직임은 해외 여성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습니다. 한국과 남미의 여성 집회나 2017년 세계 50개국에서 열린 세계여성의 날 집회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알아요.


폴란드 페미니즘도 부활시켰습니다. 각지에서 액티비스트가 많이 탄생했고, 한 번 만들어진 네트워크와 조직이 지금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2017년 임신중단규제완화법안은 2016년의 21만5천명을 크게 웃도는 40만 명 이상으로부터 지지를 모을 수 있었죠. 여성의 권리를 둘러싼 강연, 회의, 영화제 등도 늘어났습니다. 내년 폴란드는 여성참정권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여러 행사가 기획되고 있습니다.


▶ 엘레니아 구라市에서 열린 임신중단금지법안 폐기를 위한 국제연대행동 (제공: 셈초넥 마르타)


-검은 시위 이후, 앞으로의 과제가 있다면요?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큰 과제도 있습니다.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것 이상으로 엄격한 사회의 현실을 어떻게 바꿔나갈까 고민이 큽니다. 의사들이 임산부가 임신중단을 선택하지 않도록 출생 전 진단을 연기하거나, 혹은 거절하거나, 태아에게 이상을 발견해도 임신중단할 수 있는 기간 내에 알려주지 않기도 합니다. 의사에게는 종교적 양심에 근거하여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는 ‘양심조항’이 있어서, 병원장이나 병동장이 병원 전체, 병동 전체에 임신중절수술을 금지시킬 수 있거든요. 게다가 피임은 ‘양심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최근에는 양심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약제사조차 피임구나 피임약 판매를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임신중단규제완화와 함께, ‘양심조항’의 재고를 정부에 요구할 생각입니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무라타 모토미 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남성들의 강간 판타지만 무성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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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슈얼리티 지도를 만들며 발견한 것들

[Let's Talk about Sexuality] 여성의 욕망을 부정하는 사회 (선물)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20인의 여성이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여자아이들의 ‘압박자위’와 죄책감


남성의 성적 욕망은 사회에 만연해 있고 자연스럽다. 청소년기의 남성이 자위를 하고 야동을 보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로 취급된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는 남성 청소년이 주위의 타박을 받을 정도로 남성의 성적 욕망은 당연한 것을 넘어 ‘분출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남성의 자위 방법은 쉽게 찾아볼 수 있을 뿐더러, 아주 친절히 안내된다. 피부 표면이 벗겨질 수 있으니 젤을 꼭 발라라, 하고 나면 손을 꼭 씻어라, 나중에 삽입섹스를 할 때 느껴지지 않을 수 있으니 너무 세게 성기를 잡지 말라는 등의 조언은 물론 훗날의 일까지 걱정해준다.


그에 반해 여성의 성적 욕망은 존재할 수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할 수 없다. 사회가 허용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 청소년을 위한 자위 방법을 안내하는 곳이 있나? 그런 안내를 받기는커녕 여성들은 무엇이 자위인지 모른 채 압박자위를 시작하게 되기 일쑤다. 그리고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낀다.


남성의 성적 욕망은 어디서든 허용되지만 여성의 욕망은 어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심지어 남성과 섹스를 할 때조차도 ‘남성의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성은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하기도 한다.


성적 욕망을 내비치는 여성도 물론 있다. 그러나 남성들 앞에서 자유롭게 섹스 이야기를 하고, 성적 취향이나 기호를 말하는 여성은 남성들에게 있어서 ‘나와 섹스를 할 수 있는 몸’으로 취급된다. ‘쉬운 여자’, ‘싸 보인다’, ‘걸레 같다’는 말을 들어야 하고, 자신과 섹스해주길 바라는 남성들의 추근덕거림을 견뎌야 한다. 그 추근덕거림을 거부하면 원망을 듣게 되기도 하고, 심하면 폭력까지 감수해야 한다.


‘왜 나랑은 안 자줘?(씨익씨익)’은 한국 남성의 정서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누군가와 잤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여성은 다른 남성들에게 공공재가 되어버린다. 여성이 자신의 성적 욕망을 내비치고 성적으로 자유롭게 사는 것은 이렇게나 위험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뭘까


나는 어릴 적부터 성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현재도 그렇다. 압박자위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5살 때다. 이불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힘을 주면 기분이 좋았다. 이게 뭔지, 왜 기분 좋은지 알지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후에 이게 자위라는 걸 어렴풋이 깨닫고 나서는, 불순하고 더러운 생각을 가진 나에 대한 죄책감에 짓눌릴 때가 많았다. 페미니즘을 만나고, 여성의 욕망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공부해도 그 죄책감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그렇게 깊이 자리 잡고 있던 나의 죄책감은 여성들과 모여 함께 말하기를 하면서 사라질 수 있었다.


지난 3월, 불꽃페미액션에서 주최한 ‘페미들의 성교육’에 기획단의 일원으로 참여했다. <나를 위한 섹스>의 참여형 프로그램으로 ‘나의 섹슈얼리티 지도 만들기’를 했는데, 자신의 성적 취향과 섹슈얼리티를 알고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다.


여성들이 평소에 자신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말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별로 없고, 그를 위한 사회적 환경이 충분치 않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는 서로의 성적 취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이 어떤 분위기에서, 어떤 행위에 흥분하는지 등을 자유롭게 말했다.


개인적으로 참가자들이, 자신이 근본적으로 어떤 ‘분위기’에 끌리는지, 그래서 에이로맨틱인지, 에이섹슈얼인지 등의 성적 지향까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기대했다. 나의 경우 프로그램을 시연하면서 내가 에이로맨틱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 나의 섹슈얼리티 지도 만들기 ⓒ불꽃페미액션 제공


[‘나의 섹슈얼리티 지도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각각의 공간들과 그 의미]


-성: 정말 마음에 들어. 들어와 줘.(가장 마음에 드는 행위들을 적는 공간)

-숲: 몰래 하고 싶어.(은밀하게 해보고 싶은 것들)

-항구: 한 번, 해볼까?

-내륙: 내 마음에 들었어.

-배: 아직? 그닥(지금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중에 한 번쯤 해볼까 하는 일들)

-바다: 평생 안 할 듯(말 그대로 평생 하지 않을 행위들)

-타인의 섬: 차라리 케이크를 먹겠어.(무성애자들의 플로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상황들을 적는 공간)


나는 성교육 참여자들에게 무엇을 쓰면 되는지를 설명했고, 참가자들은 포스트잇에 자신의 욕망을 적었다. 그 욕망은 섹슈얼한 것이거나 로맨틱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욕망하지 않는 무언가이기도 했다. 포스트잇을 다 모은 후 우린 돌아가면서 그 포스트잇을 읽었다. 누군가가 적은 그 욕망을 듣고 그게 자신에게는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한 후 지도를 채워나갔다.


욕망을 드러내야 이게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흔히 TV 드라마에 나오는 상황인 ‘목도리를 매주며 뽀뽀하기’ 같은 것들은 [항구]에 썼지만 ‘루프탑이 있는 술집에서 노래 들으며 손잡기’는 [바다]에 들어갔다.


내 지도에서 섹스로 직결되지 않는 분위기의 것들은 대게는 [바다]로 들어갔지만, 미디어에서 로맨틱하다고 말하는 것들은 [항구]나 [숲]에 들어갔다. 사회에서 말하는 욕망을 내 욕망이라고 착각한 탓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로맨틱한 상황을 상상하거나 꿈꾸지 않았다. 그러나 동경했다. 벽쿵, 강제키스 등을 로맨틱하다고 생각한 것과 마찬가지로 여자라면 당연히 사랑, 연애를 동경해야 한다고 세뇌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의 성적 판타지는 다 달랐다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나는 내 성적 욕망의 정체에 대해 알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의 욕망이 존재하고 그것이 적나라하며 ‘남자 못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나의 포스트잇에 하나의 욕망을, 1인당 총 3개를 써야 함에도 10개 이상 쓴 참여자도 있었다. 포스트잇을 읽을 때는 더 대단했다. 단 하나의 욕망도 겹치지 않았던 것이다. 가령 ‘손잡기’라고 해도, 옷을 다 벗고 침대에 누워 손잡기, 손바닥에 글씨 쓰며 장난치기, 손가락 깍지 끼고 영화보기 등 세세한 부분은 다 달랐다.


특히 내가 포스트잇에 적었던 [야옹]은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나의 상상 속에서는 캣 플레이(성관계에서 고양이 역할을 맡은 사람을 두는 역할극 플레이) 도중 할 수 있는 말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섹스의 전조로 혹은 애교를 부리면서 등 다양하게 해석하고 상상할 수 있다는 게 재미있고 신선했다. 그 외에도 우리의 성적 판타지는 수영장 야외 섹스, 환한 곳에서 서로를 마주보며 자위하기, 좁은 차 안에서 하기 등으로 다양했다.


그동안 나는 나의 생각이 더럽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이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릴 적 내가 애니메이션 주인공끼리 키스하는 생각을 하며 자위를 했던 건 이상하거나 변태 같거나 혹은 여자치고는 순수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성적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라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과하다고 생각했던 나의 욕망들이 과하지 않을 뿐더러 다들 다양한 성적 욕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알게 되자 나의 죄책감이 사라졌다.


지도를 다 채우고 난 후, 나의 섹스 취향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에세머(SM플레이를 즐기는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해봤지만, 나에겐 가학적인 성향이 있었다. 나는 카테터(요도를 막는 얇고 긴 막대: 방광 등의 내용액 배출을 측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고무 또는 금속제의 가는 관), 에널플래그(항문에 넣는 섹스토이) 등을 좋아하고 다양한 플레이를 꿈꾼다. 상대방이 눈물이 그렁그런한 눈으로 ‘잘못했어요’ 내지는 ‘용서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걸 상상하면 즐겁고 재밌다.(물론 이런 ‘플레이’는 동의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나의 판타지를 마음껏 표출하고서야, 비로소 난 나를 알 수 있었다.


▶ 3월, 불꽃페미액션에서 주최한 ‘페미들의 성교육’ 현장 ⓒ일다(박주연)


남성들의 강간 판타지만 무성한 사회


22살이면 법적 성인이고 마음만 먹는다면 섹스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나이다. 요즘은 청소년 때부터 야동을 보기 시작한다. 그러나 야동도, 상호 합의된 섹스도, 아직 여성에게 친절하지 않다. 이성애 중심에다가 남성 중심의 야동은 여성에게 폭력적인 장면이 대다수여서 보고 있으면 구역질이 난다.


내가 처음 본 야동은 여성을 강간하는 내용이었다. 그걸 보고 난 후 며칠 동안 속이 불편했다. 흥분이 되기는커녕 실제로 내가 강간당할지 모른다는 걱정부터 들었다. 강간을 당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자살해야 하는 걸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영상은 오빠가 다운받았다가 미처 지우지 못한 영상이었다. 난 오빠가 이런 걸 보면서 자위를 할 거라는 상상으로 속이 메슥거렸다. 후에 그런 미디어들을 많이 접하면서 그게 누군가에게는 ‘흥분’의 용도로 사용되는 소재라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익숙해졌다는 거지 좋아졌다는 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자위하기 위해, 두려운 마음이 들지 않으면서 충분히 야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스토리가 있고, 잘 생긴 배우가 나오는 영상을 찾기 위해 고생한다. 남성들의 판타지로 범벅되어 있는 것 말고, 여성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야한 콘텐츠를 찾아 헤맨다.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섹스만 말한다. 내가 SM플레이를 좋아하는지 고민해 볼 기회도, 여성들에게 성적 판타지를 물어보는 곳도, 말할 곳도 없다. 자위하기 위해 나의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니, 22살이 되어서야 나의 섹스 취향을 찾은 것이 놀랍지도 않다. 지금이라도 깨달아서 다행인 걸까?


여성들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드러낼 공간은 아직 적다. 아니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애인한테도 쉽게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지 못한다. 경험이 많아 보일까봐, 가벼워 보일까봐, 헤어지고 나서 어딘가에 말하고 다닐까봐.


그에 반해 남성들의 성적 욕망은 사물에도 투영된다. 여성의 스타킹, 교복, 양말 등. 그리고 그 욕망은 그것을 착용한 사람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고등학생 때는 내가 신고 있던 스타킹을 5만원에 팔라고 요구한 성인 남성도 있었다. 이렇듯 여성들은 존재 자체로 남성들에 의해 성적 대상화된다. 반면 여성의 성적 욕망은 늘 가로막히고, 분출되는 순간 위협으로 돌아온다.


異國 (천정연 작)

나의 성적 욕망을 외치다


성적 욕망 뿐 아니라 사실 여성의 욕망은 어떤 것이든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회사에서 승진욕이 있는 여성을 ‘독하다’고 하고, 재물욕이 있는 여성을 ‘속물’이라고 비난한다. 사회는 여성이 욕망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여성을 억압함으로써 이 사회가 유지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진출의 욕망, 육아에서 벗어나고픈 욕망, 하다못해 더 멋진 남편을 고르기 위한(과거에는 생존에 필수적이었던) 욕망까지도 옹졸하고 사적이며 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치부된다.


어렸을 때부터 들어온 옛날 이야기에서 남성들이 예쁜 신부를 갖기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건 용기있다고 치부되지만, 여성들의 멋진 남편을 갖기 위한 싸움은 욕심 많은 못난 여성들의 다툼이다. 결국에는 동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처럼 그런 욕망 없는 ‘순수한’ 여성이 멋진 남편을 갖게 된다. 과거 사회에서 남성에게 아내란 장신구같은 존재이나, 여성에게 남편이란 살아남기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그렇다면 당연히 여성이 더 나은 남성을 남편으로 삼기 위해 골라야 하는데, 남성들은 자신들이 ‘선택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이 여성을 고르는 선택지만 남겨놓았다.


여전히 사회는 여성의 욕망을 무서워하고, 여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여성이 성적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을 즐거워한다. 생각해 보라, TV 속 음악방송에 나오는 교복 입고 야한 춤을 추는 아이돌, 어른스러운 화장을 하는 키즈 모델, 몸에 딱 붙게 나오는 교복 등은 과연 누구의 성적 욕망일까?


여성들이 모여 함께 서로의 성적 욕망과 판타지를 이야기하면서 섹슈얼리티 지도를 만들었던 일은 그래서 더욱 의미가 깊었다.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또 타인의 욕망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 어떤 의미인지를 말하면서 나의 섹슈얼리티를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건 불편해하고 불쾌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여성들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것이 소비되지 않고 자연스러워질 그 날까지 난 오늘도 세상의 중심에서 나의 욕망을 외친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날씨에 따라 변하는 ‘오늘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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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따라 변하는 ‘오늘의 할 일’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온습도계가 되어가는 신체


※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비가 온다”는 말은…


서울시민 상당수가 오늘의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 농도를 살펴보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요즘, 비전화제작자가 된 나는 날씨예보까지 늘 챙기고 있다. 그것도 오늘예보가 아닌 주간예보를. 전기와 화학물질 없이 지내려면 날씨와 가까워져야 한다. 비전화제작자로의 일상은 기후라는 변수를 수용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 습도, 풍속 등 꼼꼼하게 기후를 확인할수록 햇빛식품건조기를 제대로 활용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진: 기상청 날씨누리 갈무리


“비가 온다.” 주어와 서술어로 구성된 이 짧은 문장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직장을 다니던 내게 비가 온다는 사실은 차가 밀릴 테니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길에 나서야 한다거나, 덜 젖거나 아예 젖지 않을 신발을 택해 신거나, 가방에 여분의 양말을 챙기는 약간의 수고를 더해야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목공, 농사, 건축 등을 주로 하는 비전화(非電化) 제작자로서의 일과를 보내다보니 날씨는 그 누구보다 절대적인 힘을 발휘했다. 단순히 건축하기로 잡아두었던 일정이 독서토론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아지는 정도가 아니다. 깻묵액비나 생선액비처럼 고농도 액비가 아닌 오줌액비 정한은 비가 오는 날 흩뿌려주기만 하면 돼, 조리개에 담아 물에 섞은 뒤 희석하여 뿌리고 다시 조리개를 닦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날씨에 맞추어 일을 하면 훨씬 수월하게 일할 수 있고, 반대로 때를 놓치면 힘들여 해야 하는 경우가 잦았다.


날씨와 친숙해져야 하는 비전화 일상


비 소식은 당일의 할 일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일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으면 태양광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부엌은 전날부터 전력 소비량을 줄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 오는 날 영락없이 휴대전화 손전등으로 조명을 대신해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비 온 후에는 작물이 키를 한 뼘 씩 키우기 때문에 잎채소 중 잘 자란 잎들은 미리 따주는 것이 좋다.


비 온 뒤에는 풀을 맨다. 물을 충분히 머금은 흙은 먼지 보복 대신 풀뿌리를 한결 수월하게 내어준다. 모종 심기에도 좋다. 평소라면 모종 심을 구멍마다 미리 물을 부어 흙을 적신 뒤 심어야 하는데, 비 온 다음 날이라면 바로 심어도 무방하다. 비 온 다음 날은 혹시 볏짚을 쌓고 흙으로 미장한 화덕이나 건축물에 빗방울이 튀어 곰팡이가 슬지 않았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 비전화제작자 12명이 80평 남짓의 밭을 다품종 소량 재배한다. 그래도 한창때엔 잎채소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속도를 매일 수확해 먹어도 따라잡을 수 없다. ⓒ사진: 비전화공방서울


계절의 변화와 어울려 산다는 건 상록수 잎이 연둣빛이었다가 진녹색이었다가 벼이삭처럼 누렇게 변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을 누리는 호사인 동시에, 기꺼이 날씨에 따라 내 행동 반경이 바뀔 수 있는 여지를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내가 당장 건축부지에 콘크리트 기초를 부어넣고 싶은 마음에 들떠도 소나기가 멈출 기색 없이 쏟아지는 날에는 그 계획을 취소해야 한다.


기후 조건을 극복하려 애써온 사람들 


전기도 화학물질도 덜 쓰고 살 수 없을까? 인간 역시 잠시 지구라는 행성을 빌려 사는 동물중 하나일 뿐인데 다른 생명체에 피해를 주지 않으며 살고 싶어. 대단했던 신념은 종종 날씨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소소한 사건들을 겪으며 순식간에 무너지고 만다.


화덕에 미장 마감을 하려 흙 반죽을 열심히 하다가도 비가 쏟아지면 야외주방 옆 세워두었던 햇빛식품건조기로 뛰어가 실내에 낑낑대며 옮겨야 한다. 이번 주말에 건조기에 말린 과일들을 포장해 장터에 나가려던 계획을 하늘이 자비롭게 배려하지는 않는다. 평소라면 전기 식품 건조기를 플러그에 꽂기만 하면 해결될 사안이다.


▶ 토마토는 비에 약하다. 계속 해서 비가 내리면 성장점이 갈색으로 변하고 쭈글쭈글해지면서 시들어버린다. ⓒ사진: 영화 <리틀 포레스트> 갈무리


비만 오면 구멍이 송송 뚫리는 토마토를 보고 있노라면 왜 농민들이 비닐하우스를 선호하는지 십분 동감하게 된다. 무더운 볕 아래 수행하느라 물 당번이 하루에도 몇 번 씩 작업장에서 비전화정수기가 있는 부엌까지 주전자를 낑낑 대며 오가는 뒷모습을 볼 때면, 인간이 오랫동안 예상하기 어려운 자연에 저항하면서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온 데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대도시 속 미어캣이 되어가고 있는 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일상은 전력 등 외부요건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일상일 줄 알았다. 한데 도리어 자연이라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무언가와 매일을 협상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날씨에 맞춰 일하려면 그만큼 자연을 감지하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작업을 하면 할수록 내가 통상적인 자연의 흐름을 모르고 그 흐름에 맞춰 일해본 적도 없다는 자각만 커졌다.


기후에 따른 변수를 극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선조들은 내 상태와 조건에 몰두하며 살아도 불편하지 않은 삶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었고, 동시에 주변 환경에 반응하는 현대인의 촉수는 퇴화해버렸다. 내게 비전화 일상에의 적응은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잊힌 감각을 되살리는 일에 가까웠다.


▶ 비전화제작자 한 명 중 지인에게서 얻어온 매실. 청을 담으려 세척해 말리고 있다. 역시 속도가 생명이다. ⓒ사진: 오수정


‘출퇴근 시간 빼고 평일엔 매일 비가 왔으면 좋겠어. 주말만 화창하면 얼마나 좋아.’ 한때 품었던 이 마음이 얼마나 무심한 태도였는지. 여느 식당도 며칠을 흐리다 반짝 갠 날인지 한여름 같은 무더위가 일주일 내내 계속 되고 있는지, 날씨에 따라 문 앞을 기웃거리는 손님의 수가 달라지는 법인데 나 역시 그런 손님 중 한 명이었으면서 참 둔감했다.


전력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기후와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자연의 상태에 예민해져야 한다. 자연은 더 이상 휴양지 잔잔한 바다 위로 내려앉는 석양이나 다큐멘터리에서만 접한 열대우림처럼 바라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다. 수시로 대기오염 수준과 날씨를 휴대전화로 확인하고 그에 반응하며 몸을 재바르게 움직이는 나는 무언가에 몰입해있다가도 몸을 꼿꼿이 세워 주변을 두리번대는 대도시 속 한 마리 미어캣이 되어가고 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추문’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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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드러내는 직장에서 성소수자로 살아내기

[성소수자, 나도 취준生이다]⑤ 직장문화와 자기관리


성소수자 청년들의 취업과 노동을 이야기하려 한다. 소위 ‘일반’ 청년들의 노동에 있어 접점과 간극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모두 헬조선이라 불리는 사회를 살아가는 20~30대지만 ‘청년’이라는 이름으로만 묶일 수는 없다. 취업 키워드들을 통해 성소수자들과 비성소수자들의 삶을 살폈다. 그렇게 찾아낸 공통분모들이 우리 시대의 청년노동에 대해 말해줄 것이라 믿는다. [기록노동자 희정]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추문’의 주인공이 되는 일


우리의 편견은 지독하다. 직장은 그 편견을 드러내기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직급이 있고, 그에 따른 위계가 있다. 권력이란 ‘그러할 수 있는 힘’이다. 회사는 그 힘이 작용하는 곳이다. 거기에는 자신의 편견을 거리낌 없이 표현‘할 수 있는 힘’도 포함된다. ‘요새 젊은 것들은’, ‘여자가~’라는 말이 통용된다. 농담으로 하고 훈계로도 한다.


그 편견은 직장 내 커밍아웃을 막는다.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머물러야 하는 곳이 회사다. 장시간 사람들과 부대끼는 공간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며 살아가는 일은 “힘들고” “피곤하고” “에너지를 너무 쓰게” 된다. “자괴감을 주고” “거짓말을 한다는 자책”을 하게 된다. 그러나 동성애(로 대표되는 사회적 소수성)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는 공간에서 커밍아웃은 어려운 일이다. 정체성을 밝힐 경우 해고나 계약해지 가능성, 업무와 관계에 미칠 영향을 예측해야 한다. 단순히 말해 ‘추문’의 주인공이 되는 일이다.


“저랑 교류가 없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 알게 되고, 그 전에 가졌던 편견들로 혐오를 쌓아가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한다고 할 때… 그 사람들이 알고 있던 나와 그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내가 달라질까 두려워요.” -소유, 30대, 수도권 거주자, 게이, 퀘스쳐너리, 현재 IT업계 종사


정체성을 숨기는/밝히는 일은 이들에게 한평생 과업이 된다.


반갑지 않은 인정, “너는 예외”


커밍아웃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직장이라 해도, 해피엔딩인 건 아니다. 인터뷰 초기, 사람들에게 당신의 직장은 커밍아웃이 가능한 퀴어-프랜들리(Queer-friendly)한 곳이냐고 물었다. 질문이 잘못됐다. 커밍아웃을 할 수 있다고 해서 퀴어 정체성에 친숙하거나 열려있는 공간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직장에서 커밍아웃 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했다는 소유의 이야기를 빌리자. IT회사에 근무하는데, 소유는 그 회사 창립멤버다. 선임이자 창립멤버라는 권력. 직장관계에서 ‘을’은 확실히 아니다. 또 일의 특성상 성과가 분명히 보이는 기술로 평가받고, 혼자 하는 작업이 많다. 정체성이 일과 관계에 미칠 영향을 적게 걱정해도 된다. 커밍아웃 하기 ‘상대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라 했다.


성 정체성을 밝혔다. 그러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소유는 동료들과 연애 이야기도, 생활사도 잘 나누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누구와 가깝게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라고 답했다. 회사 특성상 동료들 간에 교류가 잦은 곳이 아니라 했다. 그러다 잠시 생각하더니 “내 정체성이 아니었다면 교류가 없었을까요?” 되물었다.


“회식할 때 한 명이 주말에 영화보러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누구랑 가냐고 묻는 거예요. 친구랑 간다 그랬더니 남자끼리 가냐고, ‘더럽다’고 그러는 거예요. (호모)포비아적인 대화를 하는 거예요. 그 사람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음에도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예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소유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혔다. 그러나 그 ‘사건’은 종종 잊혀졌다. 사람들은 자주 잊는다. “어떤 이는 못 들은 척하고 어떤 이는 기억을 못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나의 말을 부정”한다. 커밍아웃은 ‘거듭’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 된다.(<피해와 가해의 페미니즘> 中 소수자는 피해자인가, 한채윤, 도란스, 2018)


잊지 않았어도 “남자끼리? 더러워” 그런 식의 대화는 쉽게 나온다. 습관처럼 나오는 말이라 했다. 그게 이 사회의 상식이다. 남자와 여자가 영화를 보고,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는 것이 ‘올바른’ 사회인데 소유는 ‘예외’라 생각한다. 그 예외’는’ 인정해준다. 소유의 예외는, 오히려 이들 리그의 ‘정상’을 공고히 한다.


대화를 나눌수록 소유는 자신을 ‘예외’ 그러니까 비정상이라고 규정하는 통념을 확인한다. 상처가 잦아진다. 갈수록 말수가 줄어든다. “그러니까 점점 안 어울리게 된 것 같네요.”


자신이 이성애자였다면? 소유는 그런 대화가 즐거웠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커플끼리 놀러 가고, 여자 이야기를 하고. 일상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유는 이성애자가 아니고, 그런 대화가 반갑지 않다.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일반적인 길에서 벗어났다고들 말했다. “제 길을 가는 거죠.” 이들이 벗어난 길이란, 이런 류의 대화와 일상을 포함한다. 여자 이야기가 나오면 “예쁘냐?” 부터 묻는 대화. “요즘 것들은”으로 시작하는 품평, 아파트 평수와 자녀 성적과 남편 건강으로 채워지는 소소한 일상. 평범함 속에는 성별을 포함한 모든 권력 위계를 내면화하는 잔인함이 숨어져 있다. 그것이 편견으로 표현된다. 우리의 일상은 편견과 편견이 이어 붙인 징검다리와 같다. 그래서 그들의 상식과 편견을 비껴간 “제 길”을 가는 일은 늘 투쟁이다.


▶ 노동자를 위한 성소수자 교육자료집. 직장 내 성소수자 노동권 보장과 인식 개선을 하려는 움직임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을 통해 진행되고 있다. (출처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노동권팀)


내가 나인 것을 받아주지 않는 현장


그 길이 투쟁이기에 가지 않으려 한다. 함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모 기업 정규직원인 준수는 ‘주류’에 있고 싶다고 말한다. 패션과 디자인에도 관심이 많았으나, 일반 직장을 택했다. 몸짓 하나, 목소리 하나 자신은 ‘전형적인 남성’이 되지 못함을 안다. 그렇기에 더욱 퀴어성이 드러나는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바깥으로 가는” 자신을 경계한다.


성적 지향과 정체성을 숨기기 위해 더 주류 문화에 편입되고자 한다. “정체성이 나의 모든 생활을 잡아먹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다. 같은 맥락으로, 성별 전환을 하거나 이를 원하는 (흔하게 트랜스젠더라 떠올리는) 이들 중 사회에서 요구하는 모범적인 ‘성별 표현’에 더 집착하는 경우가 있다. 화장을 하고 긴 머리를 찰랑인다. 어깨를 넓히고 패커(성기 모형) 크기에 신경 쓴다.


이들은 성별 이분법을 파괴하는 몸 또는 성애를 지니고 있으나, 자신을 감추거나 연기한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데 온 힘을 다한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이들이 왜 그러하는가이다. 준수는 “저는 성소수자란 정체성이 좋지만” 동시에 “성소수자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내가 ‘나’인 걸 받아줄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까요.”


이 사회는 성소수자들이 나로 지낼 수 없게 한다. (이성을 사랑하는) 여자이거나 남자여야 한다. 그래서 트랜스젠더들은 지속적으로 같은 처지의 동료를 설득한다. 화장하라, 근육을 키워라, 성전환 수술을 하라. “이유는 간결하다. 왜냐면, 너무 힘드니까.”(<청년 성소수자 인식실태조사 및 청년 성소수자 활동가 당사자의 욕구조사> 강현주 외, 2015 서울시 청년허브)


‘정상성’을 연기라도 해야지 너무 힘든 삶은 피할 수 있다. 사회는 성별 이분법-정상가족으로 드러나는 ‘정상규범’에서 어긋난 인생들에 가혹하다. 인생에 체벌을 가한다. 직장에서는 체벌 집행이 해고, 재계약 파기, 직장 내 괴롭힘 쯤 되겠다. 그 이전에 고용 자체를 거부한다. 동성애자인권연대(현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곽이경 전(前) 대표의 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직장 내에서 성소수자를 보호할 법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 사회가 성소수자를 보호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에, 노동 현장에서도 성소수자를 보호할 필요가 없는 겁니다.”


실패한 몸을 숨기다


이 사회는 성소수자를 보호하려 하지 않는다. 근대 자본주의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몸의 상태를 (의료적) 실패로 규정했다. 실패하지 않고 신체를 ‘정상’ 가동시키기 위해 치료를 한다. 동성애 또한 전환치료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정상의 몸’으로 돌아갈(완치)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병원이나 가정 안에 가둬졌다.


자본주의는 ‘부정적인’ 몸을 사적 영역에 가두었다. “공적인 세계는 힘의 세계이자 가치 있는 육체의 세계이며, 성과와 생산성의 세계이고, 젊고 성인인 비장애인의 세계”이다. (<거부당한 몸> 수전 웬델, 그린비) 그리고 이성애자 비성소수자의 세계이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몸들은 사적인 영역에 머물러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근대 자본주의 이후 세상은 ‘예측과 통제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기반으로 유지되기 때문이다. 자연에 대한 통제, 신체와 노동(생산)의 통제, 더 나아가 재생산의 통제까지(국가 주도 가족계획 정책을 보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사회를 유지시킨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개별 몸을 통제하고 관리할 것을 요구받는다. 시간관리, 그리고 이성을 통한 신체/생활의 통제, 일명 자기관리는 자본주의 시작과 함께 움터온 개념이다. “열정은 스펙으로 증명하는 거죠.”(드라마 <쌈, 마이웨이> 중 대사) 우리에게 ‘노오력’을 요구하는 ‘자기관리’의 역사는 유구하다.


관리와 통제는 효율을 위해서다. 자본주의 생산(대량생산)과 판매(시장개척)를 가능케 하는 효율. 더 빠르게 생산하고 더 효과적으로 판매하기 위해서는 표준/규격화가 필요하다. 그것이 ‘관리된 정상성’으로 표현된다.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양성이라는 것은 규범 사회에서 자율성을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환상’이다.


효율의 대량생산은 재생산 영역에도 ‘정상성’을 요구한다.(‘정상’적인 아이를 낳아 훈육할 것) 더 나아가 우리 스스로가 표준화된 상품이 되어 “그러한 정상성을 잘 유지하는 존재로 계속 스스로를 재생산해야 한다.”(<불평등과 성적권리로 관점을 전환하는 여성주의적 재생산 정의운동> 나영, 2015, 장애.여성 재생산권 새로운 패러다임 만들기 기획단)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이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은 ‘실패’한 몸이다. 정상성을 유지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재생산하지 않는다. 사회적 통제의 ‘실패’를 보여주는 몸, 이는 의료적 실패인 병든 몸처럼 숨겨져야 한다. 부정당하거나 없는 취급당한다. 그래서 이야기하지 않고, 편견 속에 가두고, 그나마 ‘예외’로 취급한다. 그러니까 이들이 직장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없는 이’들을 위한 보호장치나 권리란 있을 수 없다.


▶ 동성애자인권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레즈비언상담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공저 <무지개 성 상담소> 표지 이미지(양철북, 2014)


존재를 드러내는 대항


편견은 조직적이고 보호는 없는 세상이다. 인터뷰에 응한 성소수자들은 자신의 경험이 일반화될 것을 하나같이 염려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성소수자 서사의 모든 것이 될까 봐. 어떤 이는 자신이 세상이 말하는 전형적인 ‘게이 스타일’이라 커밍아웃을 하기 꺼려진다고 했다. 전형적인 ‘부치’ 스타일 레즈비언 또한 같은 고민을 전했다.


“그 사람들 인생에 처음이자 한 명의 동성애자일텐데. 절 보고 저런 사람들은 다 그래, 생각할 거 아니에요.”


오랜 세월 편견에 노출되어 왔고, 그래서 자신이 그 편견을 재생산할까 봐 두려워한다. 사회가 부러 만들어내는 편견은 공고하고, 우리들은 편견에 무방비하고, 당사자들은 작은 행동조차 조심한다.


그러니 ‘개별의’ 존재로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하지만 그러한 세상이기에 이들이 ‘존재하는’ 일은 중요하다. 사회가 존재를 지우려 하기 때문이다. 그에 대항하는 방법은 존재하는 것이다.


경계에 선 이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일


커밍아웃은 ‘이들’에게만 의미 있는 대항이 아니다. 이들의 경험과 서사를 공유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하다.


자신이 중심이 아닌 ‘바깥’에 위치한다고 했던 준수의 말을 가져온다. 이들은 세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사회는 면접장 문을 닫아 건다. 정체성을 숨기고 들어오라고 한다. 이들은 결국 숨거나 바깥 경계에 머문다.


바깥은 안을 위해 존재한다. 예외의 존재는 보편을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현 사회는 이들을 예외로 규정하여 보편을 강화하려 한다. 그러나 예외는 거듭 확인될 수밖에 없고, 예외‘들’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정상성’에 균열을 낸다.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비정상인가의 반복된 학습은 문득 그런데 정상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으로 튀어버리기 때문이다.


▶ 아서 프랭크 에세이집 <아픈 몸을 살다> 표지 이미지(봄날의 책)


자신의 질병 경험을 서술한 <아픈 몸을 살다>에서 아서 프랭크는 아픈 몸은 “경계에서 삶을 조망하면서 우리의 삶의 가치를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볼 수밖에 없게” 한다고 했다. 더는 건강이 유지되고 통제되는 것이 ‘정상’적이고 당연하다고 믿어온 삶에서 머물 수 없다. 경계에서 삶을 조망한 결과 “그저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살고 싶은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아픈 몸을 살다> 아서 프랭크, 봄날의 책)


경계에 서면 그간 당연하다고 여겨온 것들이 낯설어진다. 이들의 자리에 서면 ‘생산과 효율을 위해’ 내 자신마저 ‘정상으로’ 꾸준히 재생산 해내야 하는 기존의 노동이 낯설게 보인다. 경계에서 선 이들의 낯선 경험은 우리가 “살아온 대로 사는 대신” 다른 가치와 방식을 꿈꾸게 하는 단초가 된다.


그러니 이들의 ‘드러냄’에 응답해야 한다. 이들의 낯선 경험을 나누어야 한다. 커밍아웃은 혼자 외치는 작업이 아니다. 듣고 응답할 이가 필요하다.


사라지지 않기 위해


그럼에도 왜 ‘그들’에게 응답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우리도 사라질 판이니까.”


‘없다’ 취급되는 건 성소수자만이 아니다. 세상은 감춰진 사람 몇몇쯤 가지고 있다. ‘정상’을 벗어나면 규범에 어긋나면 우리는 사라짐을 강요받는다. 미투(#MeToo) 운동은 이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가. 성폭력은 만연한데 세상은 없는 일인 척 해왔다. 피해경험자는 사라지고 ‘꽃뱀’만 남았다.

 

우리는 존재를 이유로 늘 사라져왔다. 뚱뚱한 여자는 여자로써 사라진다(너도 여자냐?). ‘여자답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여자도 사라진다(쟤는 남자지). 취업 면접장에서 여자는 투명인간 취급당한다(무시하다가 기껏 한다는 질문이 “결혼할 겁니까?”). 취업난의 스포트라이트는 ‘장애인’, ‘질환자’, ‘비대졸자’, ‘성소수자’ 를 비추지 않는다. 조명 불빛 안 사람들은 행복한가. ‘노오력’하고 ‘자기관리’하지 않는다면? 손쉽게 퇴출된다.


우리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우리가 ‘정상’과 ‘표준’에 들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말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늘 불안했다. 애썼다. 그 애씀이 숨이 차 행복하지 않다.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을 갖고도 행복하지 않다. 이제 작동설명서를 다시 봐야 할 때다.


우리를 둘러싼 구조와 문화를 바꿀 때가 됐다. 직장 내 페미니즘 모임도, 노동조합도 그 측면에서 고민이 된다. 해고가 손쉬운 사회는 성소수자가 커밍아웃 하기에도 위험하다. 성소수자들이 혐오에 노출될까봐 몸을 숨기는 공간에서는 여성의 몸 역시 남성중심의 시선에 갇힌다.


경계에 선 이들의 경험과 목소리에 응답하는 것은 여러 방식이 될 수 있다. 그것의 귀결은 “오랫동안 살아왔던 대로 계속 사는 대신” 다른 삶을 꿈꾸는 일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내가 살고 싶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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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후에 이사 갈 수 있을까?

<아주의 지멋대로> 살고 싶습니다


※ 지구별에 사는 인간종족입니다. 글을 그리고 그림을 씁니다. [작가 소개: 아주]


▶ 살고 싶습니다. ⓒ일다 (아주의 지멋대로)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여성노동을 다룬 현대미술전 “히든 워커스”의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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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을 다룬 현대미술전 “히든 워커스”의 의의

여성의 관점으로 ‘미술’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 필자 이충열님이 여성주의 미술가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전시를 보기 위해서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밟아야 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전시에 대한 설명이 빼곡하게 적힌 까만 글씨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전시 의도는 계단을 내려오며 그 벽을 바라보았을 때부터 드러난다. 사선으로 보아야 보이는 흰 벽의 하얀 글씨-HEDDEN WORKERS-는 모두 대문자다. 전시를 기획한 박혜진 큐레이터는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 철저하게 평가 절하한 ‘여성노동’의 의미를 큰 소리로 외치면서도, 그 사실을 이 사회가 은폐하고 있는 현실을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것 같다.


▶ 코리아나미술관 현대미술 전시 <히든 워커스>(HIDDEN WORKERS) 메인 이미지


기획 의도가 뚜렷한 전시에서 좋은 작업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관객의 입장에서 행운이고,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자극이 된다. 이 자극을 어떻게 소화할까 고민하느라 전시 소식을 미처 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각각의 작품 설명 위주로 소개된 글은 보도를 통해 많이 공유되었기 때문에 전시 자체에 대한 글을 써보기로 했다.


여성주의를 지지하는 미술가이자 교육자로서, 필자는 코리아나미술관의 현대미술 전시 “히든 워커스(HIDDEN WORKERS)”의 세 가지 의의를 이야기하려 한다. 첫째, 이 전시는 현대미술이 너무 어렵고 복잡해서 관객을 소외시킨다는 오해를 해소할 수 있다. 둘째, 중산층 엘리트 여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과거 서구의 페미니즘 미술이 현대에 와서 더 다양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셋째, ‘미술관’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친절한 현대미술 전시


현대미술은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고 어렵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회화나 조각을 보면 직관적으로 ‘아름답다’거나 ‘잘 만들었다’거나 ‘좋다’는 등의 느낌/감정을 가지게 된다. 반면, 관객의 사유(思惟)를 요청하는 현대미술은 주체로서의 개인보다 소속과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로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수평적인 관계와 연대보다 수직적인 관계와 조직문화에 익숙한 대한민국의 환경에서는 더욱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또한 개념미술처럼 우리의 삶과 직접 연결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는 문제에 집중하거나, 언어와 철학을 깊이 다루는 작업들은 관련 지식을 필요로 해서 관객이 소외되는 경향도 있었다.


그런데 <히든 워커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하는 ‘노동’이라는 소재를 다룸으로써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우리의 삶과 유리되었던 ‘미술’이 우리 ‘삶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다룬 것이다. 또한 수많은 노동 중에서 ‘여성노동’이 가지는 특수성을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관객의 경험과 맞닿을 수 있는 표면적이 넓다. 직접 재현을 통해 결론 내린 방식이 아니라, 여러 세대와 여러 문화의 작가들이 각자의 입장과 관점에서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다각도에서 접근한 작업들을 통해 ‘여성노동’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그 덕에 관객들도 자기 경험에 비추어 자유롭게 작업을 경험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 미얼 래더맨 유켈리스, 하트포트 워시:닦기/자국/메인터넌스, 실외 (코리아나 미술관 제공)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미술과 달리 시각적 스펙터클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 과거 미술이 선사했던 이미지를 통한 자극을 대중매체와 오락산업이 충족시켜주게 되면서, 현대미술은 점점 의미를 만들고 지배 이데올로기가 가렸던 진실들을 드러내어 보여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신자유주의 경쟁 논리에 의해 모든 분야에서 자극성을 추구하게 된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미술도 ‘유명한’ 작가가 자신이 소유한 자본과 권력을 이용하여 ‘거대한 규모’로 작업하거나, 캐릭터 상품처럼 누가 봐도 그의 것임을 알 수 있도록 자기복제해서 ‘각인’ 효과가 있을 때 인정을 받는 것 같다.


아직도 우리가 제도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미술’은 서양의 전통적인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여 ‘기술’적인 훈련이 기본이 되는데, 남성중심의 사회에서는 여성보다 남성에게 기술 전수의 기회가 더 많다. 미술대학의 재학생은 여학생이 훨씬 많지만, 교수는 압도적으로 남교수가 많고, 미술계에서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대다수가 남성임을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남성중심 문화는 물질성과 규모와 형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전통적인 ‘아름다움’의 기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가치를 추구하거나 대안적인 미를 탐구하거나 과정 중심적인 작업은 국내 미술‘계’에서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인지 젠더 이슈를 다루거나 여성주의 관점을 미술의 언어로 표현하려 했던 페미니즘 미술은 작가가 어떤 시기에 잠깐 스쳐가는 소재나 주제로 소비하거나, 남성의 시선을 그대로 재현하면서 여성이 했으니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이슈에 따라 급하게 결성되어 평면적인 기획에 그치거나, 열악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장소에서 열리거나, 기간이 짧거나 전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더 많이 공유되지 못해서 아쉬운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히든 워커스>는 착실하게 기획되어 완성도 높은 전시로서 홍보도 잘 되었고, 충분한 기간 동안 열리고 있다. 또한 전시 정보를 습득한 도슨트가 아니라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직접 설명을 해주는 등 전문성과 대중성을 함께 추구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임윤경, 지속되는 시간  (코리아나 미술관 제공)


서구 페미니즘 미술사와 국내 ‘여성주의 미술’ 흐름


필자가 처음 페미니즘 미술을 접한 것이 10년이 넘었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는 ‘페미니즘 미술’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여전히 페미니즘 미술은 여학생이 대다수인 미술대학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페미니즘 미술은 “왜 위대한 여성예술가는 없었는가?”라는 린다 노클린의 문제 제기가 기폭제가 되어 미국을 중심으로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서구의 페미니즘 미술 운동은 백인/중산층/엘리트 여성의 문제 의식에서 출발하여 초기에는 다른 소수자를 고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점차 가부장제 권력 구조에 대한 문제 의식으로 심화되고 다양한 목소리를 유연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실험들을 통해 발전해왔다. ‘여성주의 정체성’이 계속 변화해 가듯이 페미니즘 미술도 변화를 거듭한 것이다.


엘리트 여성들로부터 시작되었던 서구 페미니즘 미술과 달리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은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에서 시작하여 처음부터 여성노동자의 삶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다음 세대로 연결되지 못하고 명맥이 끊겼다는 평가를 많이 받는다. 서구의 페미니즘 미술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무너뜨리려는 현대미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왔지만, 국내 상황은 달랐다. ‘민중미술’이 독재정치에 의해 탄압받으며 유연하게 변화하지 못하면서, 일상을 외면하는 ‘세련된’ 형식의 ‘미술’만이 살아남아 소수를 위한 교양과 사치의 문화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을 다루었던 국내의 ‘여성주의 미술’은 설 자리를 잃은 것이다.


물론 ‘여성주의 미술’의 시도와 기획이 없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고, ‘미술계’에서 무시되거나 악의적으로 평가 절하된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페미니즘 미술사의 한 흐름을 볼 수 있고 전문성과 대중성을 확보하며 주목받고 있는 <히든 워커스> 전시가 더 반갑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전시는 전면적으로 여성의 삶과 노동의 문제를 다루고 있어 2016년 5월 19일 강남역 여성대상 살인 사건 이후의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에 부흥하면서도 젠더폭력 이슈에 머물던 기존 전시들과 차별성를 가진다. 또한 1970년대부터 아주 최근의 작업들을 통해 서구 페미니즘 미술과 국내 ‘여성주의 미술’의 연결점을 잘 보여준다.

▶ 릴리아나 앙굴로, 유토픽 네그로 (코리아나 미술관 제공)


바람직한 미술관의 역할


국내에서 미술 전시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인 것 같다. 미술 전공자, 데이트하는 연인, 소수의 미술애호가나 투자자. 이외의 사람들은 지인이 전시를 하지 않는 이상 전시장에 갈 일이 거의 없다. 미술은 우리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입시 위주의 공교육 제도는 근대적 분과 학문을 통합시킬 기회를 제공하는 예술교과를 축소하여,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미술’을 접할 기회가 더 줄어들었다. 게다가 현대미술이 지배 이데올로기가 개인들을 억압하기 위해 만든 견고한 벽에 틈새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면, 시장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현대미술을 환영하는 곳이 드문 것이 당연하기도 하다.


대중매체를 통해 홍보되는 전시는 대부분 과거의 ‘유명한’ 작품이나 ‘과학과 미술의 만남’ 등 기술적인 효과로 흥미를 유발하는 것들이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서 미술을 접할 수 있는 전시장은 ‘화랑’ 또는 ‘갤러리’로 미술품을 거래하기 위한 공간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상품으로서의 미술’이 아니라 ‘예술로서의 미술’이 발달하려면 교육을 포함하는 ‘미술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와 참여 작가가 함께 이끌어가는 ‘큐레이터 & 아티스트 토크’는 이번처럼 기획이 중요한 전시에서는 더욱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시 주제와 관련된 전문가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전시 연계 세미나’ 역시 전시에서 다루는 주제를 더 심화시킬 수 있게 돕는 장치라는 점에서, <히든 워커스> 전시가 교육의 중요성을 충분히 고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5월 19일에 열린 ‘전시 연계 세미나’에서 스스로 ‘엘리트 여성’으로서의 한계를 인식하는 강연자와 젠더폭력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20대 여성의 대화도 의미심장했다. 이 대화는 강의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에 이루어졌는데, 이 시간도 강의 후 형식적인 것이라기보다 강연자가 다른 세대의 이야기를 듣고자 청하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 관객이 강연자에게 ‘몰카’라는 단어를 지양하고 ‘불법 촬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강연자는 ‘불법 촬영’이라는 표현은 그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불온하고 은밀한 욕망을 표현할 수 없고, 본인은 ‘적들의 언어’를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바꾸는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몰카(불법 촬영)’이라고 표기하겠다고 했다. 사회적 위치에 따른 경험의 차이와 그에 따라 심리적 거리두기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차이를 볼 수 있으면서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에 대해 알 수 있었던 이 에피소드는 <히든 워커스>의 의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 조혜정 & 임숙현, 감정의 시대-서비스 노동의 관계미학 (코리아나 미술관 제공)


여성의 삶과 미술이 만나는 장


대한민국에서 ‘미술’은 사교육을 통해 ‘입시미술’을 훈련 받아서 특정한 형식의 시험에 합격해야 ‘전공’을 할 수 있고, 대학에 가서도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교육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인식이 없으며 물질을 만드는 작업을 선호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여러 자원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이 지속적으로 ‘창작’ 행위에 집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환경에서 결국 ‘미술 작업’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계층’이 아닌 경우가 많다. 작업의 주제나 관심이 국민 다수인 ‘노동자’와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게다가 ‘미술’이 세상을 보는 방식은 ‘가부장제 남성의 시선’이기 때문에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은 혼란을 겪으면서도 ‘여성으로서 보기’를 시도하기 어려워한다.


이런 현실에서 ‘여성’의 ‘노동’ 문제를 ‘미술’로 다룬 이 전시 소식을 들었을 때 큰 기대감이 있었다. 이미 전시관에서 공개한 보도 자료가 작품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일개 작가로서 평하기는 부끄럽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전시의 배경과 의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히든 워커스>가 여성의 관점으로 ‘미술’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논의를 확장시키는 데에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아직 2주의 전시 기간이 남았으니 더 많은 사람들이 관람하면 좋겠다. 전시장에서 감탄하고 마는 전시가 아니라, 일상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삶에 대한 고민을 연결시킬 수 있는 좋은 작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은 사람이 경험하면 좋겠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아일랜드, 국민투표로 임신중단 허용 "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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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단 허용’ 아일랜드가 새로운 역사를 쓰다

수정헌법 8조 폐기 국민투표에서 승리하기까지



“수정헌법 8조에 의해서 그동안 임신중단을 하고자 했던 여성들은 ‘비행기나 배를 잡아타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늘부터는 ‘우리의 손을 잡으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너 알아서 해라’는 말을 들었지만, 오늘부터는 ‘이제 우리가 함께 하겠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사이먼 해리스 보건부 장관(Health Minister)은 임신중단을 금지하고 있는 헌법 조항을 폐기하는 국민투표가 66.4%의 찬성으로 통과된 후, “오늘은 아일랜드에 굉장히 중요한 날”이라고 말하면서 이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임신중단 시술을 받기 위해 아일랜드 여성들이 영국 등으로 떠나야 했던 과거는 이제 끝났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새로운 역사를 썼다고 평가 받는 아일랜드의 국민투표 결과가 유독 중요한 이유는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이 12주 이내 인공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는 것에 반해, 아일랜드는 산모의 생명에 위험이 있을 때만 임신중단을 허용하는 매우 보수적인 규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진) 국민투표 결과를 보면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임신중단 금지 폐지에 ‘찬성’에 한 걸 알 수 있다. ‘반대’가 높은 빨간 지역인 도니골 뿐인데 임신중단을 여전히 금지하는 북아일랜드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영향으로 보인다. (출처: refcom.ie)


아일랜드에선 1861년에 만들어진 법(Offences against the Person Act)에 의해 임신중단 금지가 명기된 이래 엄격하게 통제되어 왔다. 당시 법에 따르면 인공임신중단을 한 여성과 그에 조력한 사람은 노예가 되는 형벌이 주어졌다.


그리고 1983년 9월, 여성과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보는 수정헌법 8조가 국민투표에서 66.9%의 찬성을 얻어 통과되었다. 이 법에 따르면 인공임신중단을 한 여성과 조력자는 최고 14년형을 선고 받는다.


그리고 35년이 지난 2018년, 마침내 국민투표로 수정헌법 8조가 폐지되기까지 그 과정은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마법 같은 순간이 아니었다. 임신중단과 관련된 중요한 논의를 이끈 몇 가지 사건과 여성들이 있었다.


□ 1992년의 X-Case


만 14세였던 X라는 소녀가 이웃집 남성에게 강간을 당한 후 임신을 했다. 그는 임신중단을 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가려고 했지만 그 여행은 국가에 의해 금지되었다. 출국할 수 없게 된 것이다. X는 자살충동 및 정신건강 피해를 호소했고, X와 같이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산모에게 임신중단을 허용하라는 소송이 제기됐다. 대법원은 출국을 허락하게 되지만, 결국 X는 유산을 했다.


X 사건과 소송은 아일랜드 내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끝내 법 조항은 수정되지 않았다. 다만 임신중단 금지 조항이 임신한 여성의 여행할 권리와, 타 국가의 임신중단 관련한 정보가 유통되는 것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수정만 승인되었을 뿐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대법원관이었던 휴 오플레어티가 은퇴 후 2013년 7월 <아이리시 타임즈>(The Irish Times)와의 인터뷰에서, 그가 임신한 여성의 여행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에 동의한 이유는 “산모가 자살할 위험을 고려했으며 만약 산모가 자살을 선택하면 산모와 아이를 둘 다 잃기 때문”이라고 밝혔다는 거다.(‘X Case judge says ruling is ‘moot’ in current abortion debate’ 기사 참고)


한편, X를 강간한 션 오브라이언은 4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3년 동안만 감독에서 지냈다. 이후 1999년에 또 만 15세 소녀를 성추행한 혐의로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당시 인공임신중단으로 인해 받게 되는 벌이 최고 14년형이었다는 점이 다시 상기될 수밖에 없다.


이후에도 X사건과 관련된 논의는 계속되었다. 2002년, 자살충동에 시달리는 산모에게 임신중단을 허용하자는 헌법 수정에 대한 국민투표는 찬성 49.6%, 반대 50.4%로 통과되지 못했다.


▶ 2016년 11월 25일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열린 “Women’s Rising” 집회 참가자들이 임신중단 합법화를 요구하고 있다. ⓒ촬영: 최혜원


□ 2012년 사비타 할라파나바르의 죽음


2012년 10월, 인도 출신으로 17주 임신 상태였던 31세 여성 사비타 할라파나바르가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비타는 병원에서 ‘유산을 피할 수가 없는 상태’라는 판정을 받고 임신중단을 요청했다. 그러나 의료진은 사비타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하지 않았고, 태아의 심장박동 소리가 들린다는 이유로 시술을 거부했다. 하지만 사비타는 곧 패혈증에 빠졌고, 의료진이 사비타의 생명이 위험하다고 판단한 순간엔 이미 치료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의료진은 분만을 유도하고자 했으나 이미 완전히 유산된 상태였고, 패혈증이 더 심해져 결국 사비타는 사망하고 말았다.


당시 법에 따르면 산모의 생명에 치명적인 위협이 있을 경우엔 임신중단 시술을 할 수 있게 되어있었지만, 그 범위가 모호했고 처벌을 두려워 한 의료진이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비타의 가족들은 여성의 재생상권을 주장하는 ‘프로 초이스’(Pro-Choice) 단체에 관련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고, 11월 언론과 방송 등에서 이 사건을 조명하기 시작했다. 보도가 나간 다음 날인 11월 14일, 약 2천명의 사람들이 모여 사비타의 죽음을 추모하고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법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위와 집회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너무 엄격한 임신중단 금지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 목소리가 모여 2013년 ‘임신 중 생명보호법’(Protection of Life During Pregnancy Act 2013)이 제정되었다. 이 법안은 그동안 모호하게 ‘산모의 생명이 위험이 처했을 때’라고 규정했던 부분을 조금 더 명확하게 정리했다.


▷ 육체적인 질병으로 위험한 상황: 산부인과 전문의 한 명과 질병 관련 분야의 전문의 한 명이 함께 논의해서 판단하며, 가정의학과의 조언도 구한 후 결정한다. 적절한 기관에서 선택적 수술을 통해 진행한다.

▷ 응급 상황의 육체적 질병으로 위험한 상황: 한 명의 전문의가 진단과 실행을 결정한다.

▷ 자살 가능성으로 위험한 상황: 산부인과 전문의 한 명과, 임신한 여성이나 출산한 여성을 상담/치료한 경험이 있는 정신과 전문의, 그리고 또 한 명의 정신과 전문의를 포함한 세 명이 함께 논의해 판단하며 가정의학과의 조언도 구한 후 결정한다. 적절한 기관에서 선택적 수술을 통해 진행한다.


▶ 임신중단 규제를 피해 국제 수역에서 인공임신중단 시술을 하는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 프로젝트를 다룬 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Vessel, 다이애나 휘튼, 미국, 2014) 한 장면.


□ 2014년 Ms.Y Case


Ms.Y라는 여성이 ‘모국에서 강간을 당했으며 그곳에서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망명을 요청하며 2014년 3월 아일랜드에 들어왔다. 그리고 4월 Ms.Y는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다. 임신중단을 하기 위해 영국으로 가겠다고 밝혔지만 망명신청자 신분이었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Ms.Y를 지원하던 단체는 이민국과 논의했지만 계속 반복되기만 하는 공방 속에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5월이 되자 Ms.Y는 임신 14주가 되었고 인공임신중단 시술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점점 낮아졌다. 6월부터 Ms.Y는 우울증을 호소했으나 의사는 ‘아직 자살충동을 느끼는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7월부터 Ms.Y의 자살충동은 점점 강해졌고 ‘음식과 물을 거부하는 상태’가 되었다. 단식을 반복하던 Ms.Y는 8월 5일 40시간이 넘도록 식음을 전폐했고, 위험한 상태라고 판단한 의료진들이 임신 26주 상태에서 수술을 통해 출산을 유도했다. (Irish Times 기사 ‘Timeline of Ms Y case’ 참고)


Ms.Y는 2015년 9월 난민 자격을 획득했다. 이후 보건서비스 센터(Health Service Executive)와 법무부, 병원 등을 ‘업무태만, 의무 불이행 및 감정적 고통과 상처를 유발한 점’ 등의 사유로 고소했다.


이 사건은 ‘임신 중 생명보호법’이 제정된 후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말 이 법이 실질적으로 여성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 회의적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었다. 또한 경제적, 사회적 이유로 해외로 나가 임신중단 시술을 받기 어려운 여성들이 어떤 상황에 놓이는지에 대한 시사점을 다시 한 번 던져주었다.


#HomeToVote 역사를 새로 쓴 동력들


조금씩 임신중단 금지의 불합리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법이 수정된 부분도 있었지만, 아일랜드의 많은 여성들은 원치 않은 임신으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며 ‘임신중단 금지법 폐지’를 외쳤다. 약 17만 명의 여성들이 임신중단을 하기 위해 해외로 떠나야 하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소리쳤다.


2016년에는 아만다 멜럿(Amanda Mellet)이 국가를 고소하고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해 승소했다. 임신 21주에 태아가 ‘에드워드 증후군’으로 심각한 상태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임신중단시술을 거부한 의료진 때문에 영국으로 가야만 했던 아만다는 자신이 겪은 육체적, 정신적 트라우마에 대해 국가가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 소송은 최초로 국가가 ‘원정 임신중단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성’에게 보상하라는 결과를 이끌어 냈다.


여성들의 재생산권을 요구하는 ‘선택을 위한 행진’(March for Choice) 집회에는 매년 참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수정헌법 8조 폐지를 외치는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관련 기사: ‘낙태죄 폐지하라!’ 아일랜드의 열기 http://ildaro.com/7709)


이번 국민투표 실행이 결정되고, 투표 전날까지 ‘투표를 위해 집으로 오라’는 #HomeToVote 해시태그 운동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었다. ‘Yes’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Repeal’(법률 폐지)가 크게 쓰인 티셔츠를 입은 여성들이 공항으로 줄지어 입국하는 모습은 매우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된 이후, 사이먼 해리스 보건부 장관은 ‘나는 언제나 여러분 옆에 있겠다’고 밝혔다.(출처: 사이먼 해리스 트위터)


‘수정헌법 8조 폐지’ 찬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어 온 현재 아일랜드 리오 버라드커 총리와 사이먼 해리스 보건부 장관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이들이 1979년생과 1986년생으로 40살과 33세의 굉장히 젊은 정치인이라는 사실도 주목해 볼만 하다.


2015년 국민투표로 결정된 ‘동성결혼 법제화’ 이후 2018년 ‘임신중단 금지법 폐지’까지,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이며 가톨릭의 국가로 불렸던 아일랜드가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아일랜드의 국민투표 결과의 영향으로, 더 보수적이라고 알려져 있는 북아일랜드에서도 ‘임신중단 금지 폐지’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제 아일랜드에서는 12주 이내의 인공임신중단이 허용되는 것과 더불어, 산모나 태아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 등에 관한 세부적인 내용이 담긴 법안이 제출될 예정이다.


이런 세계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함께 변화를 이끌어낼지 아니면 뒤안길로 빠질지 국내에서도 많은 이들의 목소리와 행동 그리고 선택이 더욱 중요해졌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는 일

‘페미니즘 교육’ 정말 준비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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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교육’ 정말 준비됐나요?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창립 1주년 기념 북콘서트



“이미 교과서 집필기준과 검정기준에 양성평등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초등학교 교과서에 가족 구성원의 역할 등이 나오는 수준으로, 명시적으로 성 평등 내용은 없습니다. 중고교에서는 도덕, 사회 등의 교과에서 다루고는 있지만 양적 질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지난 2월 27일 국민청원 20만 명을 돌파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요구에 대해,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11:50 청와대입니다」 국민청원에 답합니다” 영상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이어 “페미니즘 교육과 인권 교육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2011년 이후 진행되지 않은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또 “학교 선생님들을 위한 교수, 학습 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교육부 예산 12억을 쓰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 2월 27일 발표된 “「11:50 청와대입니다」 국민청원에 답합니다” 영상 중에서


‘초중고 학교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이 1월 6일부터 시작되어 약 21만 명이 넘는 청원 동의로 2월 5일 마감되기까지 시점은 국내에서 미투운동(#MeToo)이 시작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들이 겪었고, 겪고 있는 성폭력을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이 변화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끌어내며 성차별 문화를 바꾸고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 교육이 필요하다고 외쳤다.


국민청원에 답하는 국민소통수석의 말처럼 성평등 교육, 인권 교육, 페미니즘 교육이 혼용되어 쓰이는 현재 상황 속에서, 과연 ‘페미니즘 교육’이란 정말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며 논의하는 일은 아직 많지 않다. 굉장히 범위가 넓어 보이는 이 교육의 ‘의무화’를 위한 과정으로 교육부 전체 예산인 68조2천322억 원 중 단지 12억의 예산이 쓰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도 말이다.


창립 1주년을 맞이한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는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언급되기 시작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에 대한 심층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이슈를 던졌다. 5월 18일(금) 서울시NPO지원센터에서 페미니즘 관련 교육의 현장 속에 있는 교육 주체들이 서로 목소리를 내는 자리를 마련했다. “준비됐나요, 페미니즘 교육?”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 행사는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김서화 지음, 2018)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됐다.


1982년부터 실시된 성교육, ‘대체 뭘 배운 거지?’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인 김서화 씨는 자신이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를 쓰게 된 경위를 밝히고, 성교육이 페미니즘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이야기했다.


“시작은, 단순한 저의 생각이었어요. ‘성교육,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런데 주위의 반응은 의외로 달랐다. “주변인들에게 ‘성교육 해야 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꺼내면 극성엄마로 보거나 이상하게 보더라고요. 다른 교육에 대해서는 주변에서 필요 없는 조언도 많이 하고 하는데 ‘성교육’이라는 말만 꺼내면 대화가 단절되는 거예요.”


교육열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정적인 대한민국에서 ‘교육’이 붙어있는데도 쉬쉬하는 몇 안 되는 분야인 성교육, 그 중에서도 “초등학생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엔 공백이 있다.” 김서화 연구원은 “요즘은 오히려 유치원에선 아동 대상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하는데, 초등학교엔 남자아이를 대상으로 한 성교육이 부재하다”고 지적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직 할 시기가 아니다(2차성징이 안 왔다)’, ‘오히려 빨리 알려주면 자극이 된다’는 핑계는 물론이고, ‘학교에서 시켜주잖아’라는 회피까지.” 김서화 연구원은 거기에 또 한 가지 이유를 지적했다. “남자아이들의 엄마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성폭력) 피해자가 될 일이 없다고 생각해요. 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죠.”


▶ “준비됐나요, 페미니즘 교육?” 북콘서트에서 발표 중인 김서화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 연구원 ⓒ일다(박주연)


성교육을 ‘성폭력 예방교육’으로 한정하고 여성을 대상으로 삼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김서화 연구원은 “근대에 들어오면서 여성들이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교육의 장이라는 공적 자리에서 여성들의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서 각 가정의 어머니한테 딸한테 ‘(성)교육을 하시오’ 했거든요”라고 말했다. “여성들에 대한 교육이 곧 성교육”이었다는 것. 김서화 연구원은 “정절, 순결 교육이었던 성교육이 이젠 성폭력 예방교육이 되었고, 그 교육에선 결국 그 위험에 노출되는 게 누구인지 이미 정하고 배우는 형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1982년부터 성교육이 실시되었지만 오늘날 미투 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면 ‘우린 대체 뭘 배운 거지?’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며, “결국 성교육이 계속 여성교육으로 머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이들은 이미 ‘싸내’의 의미를 알고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에게 ‘성교육으로 할 말 몇 마디를 알고 싶어서’ 시작된 김서화 연구원의 고민은 “하다 보니까 ‘아, 이게 성교육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 더 찾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 이것도 문제네, 저것도 문제네?’ 하면서 점점 더 깊어져 갈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합리적이고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 반해 아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폭력적이고 무지하고 더럽고’ 이런 말이 나와요. 그러면 또 ‘이제는 여성 상위 시대’라던가 ‘거봐라, 역차별 있다’는 말이 나오죠.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여자니까 이렇다, 남자니까 이렇다’는 말을 하면서 여/남을 가른다는 거죠.”


특히 요즘 초등학교는 “굉장히 안정화된 방식의 젠더 역할이나 편견들을 잘 생산하는 공간이 된 것 같다”고 발언하며, “그렇게 ‘남자니까, 여자니까’로 성별을 나눠서 문제의 원인과 해결을 찾는 방식이 빠르고 쉽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성교육에서 시작했지만 “정말 성교육이 되려면 그 틀을 초과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 김서화 연구원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력에 대해서 어떻게 가르치냐고 물으시는데, 아이들은 직관적으로 그게 뭔지 알고 있어요. 아들이 3학년 즈음에 등에 멍이 들어서 온 거에요. 원래 엄살이 심한 앤데 저한테 말을 안 한 게 이상해서 물어보니까 여자애가 때렸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여자한테 맞고 우는 거 아니라고. 싸내는 그러는 거 아니라는 거예요.’ 제가 놀라서 ‘싸내’가 뭐냐고 물었더니 혼란스러워 하는 거죠. 그래서 그럼, 사내가 아닌 건 뭐냐고 물었어요. ‘그건 다른 애들이랑 못 노는 거야’ 하더라고요. 이미 아이는 남성성에 대한 이해를 직관적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에게 권력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 김서화 연구원이 쓴 <페미니스트 엄마와 초딩 아들의 성적 대화>(미디어일다, 2018) 표지


충격적인 만남, 녹색어머니회와 ‘보이루’


김서화 연구원은 또 하나의 일화인 “녹색어머니회를 하면서 겪은 경험”을 털어놨다. “어느 날, 녹색어머니회 일 때문에 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하는데 아들이랑 친구들이 ‘보이루’라고 인사하는 장면을 딱 본 거에요!”


“보이루(어느 남성 유명 유투버가 쓰기 시작한 말로, 해당 유투버의 이름 중 한 글자와 ‘하이루’를 합친 단어. 해당 유투버의 여혐 논란과 함께 이 말이 여성 성기와 하이루를 합친 말이라는 걸로 논란이 심해졌지만, 초등학생 사이에서 유행어로 쓰이고 있음)가 여혐 단어로 쓰이고 있는 맥락이 있으니까 충격이었죠. 이 남자아이들이 ‘한남’의 자질이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에요. 녹색아버지회가 아니라(녹색아버지회는 있지도 않지만) 결국 녹색어머니회가 ‘보이루’와 만나게 되는 이 상황, 너무 젠더적이지 않나요?”


아들이 어떤 남성성을 표출하는지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 건 “항상 녹색어머니회를 하는 엄마뿐이며, 교정을 할 수 있는 것도 엄마 뿐”인 이 상황. 여기서 “단순히 ‘보이루’를 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상황이나 조건 자체가 이렇게 젠더적으로 놓여있다는 것”에 주목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서화 연구원은 “더 크게 봐야 한다”며 “아들이 (딸과) 다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는 관점에서 벗어나 “아들이 ‘남성’이라는 특권을 가지고 태어나 구조맹(성차별 구조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이 되기 쉬운 현재의 상황을 고려해서, 어디에 초점을 맞춰서 말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교육 자체에 페미니즘 관점이 들어가야 된다고 책을 썼는데, 페미니즘 교육이 청원으로 올라와서 놀랐다”고 밝힌 김서화 연구원은 다만 “페미니즘이 교육과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이 교육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등의 논의로 가야 페미니즘 교육이 의미 있어지지 않을까 싶어요.”


시작은 단순했던 ‘어떻게 아들 성교육을 할까?’의 질문이 산 넘고 강 건너 결국 페미니즘으로 왔다. 자신의 고민을 깊게 파고 들어간 경험을 풀어낸 김서화 연구원이 ‘자신의 책을 양육서로만 봐 주면 서운할 것 같다’고 말한 의미를 알 수 있는 발제였다.


▶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에서 주최한 “준비됐나요, 페미니즘 교육?” 북콘서트 발표자와 패널들. (왼쪽부터 신그리나 연구원, 김서화 연구원, 최기자 부소장, 김수자 제천간디학교 교사, 정소연 경희대학교 학생) ⓒ일다(박주연)


페미니즘 교육, 정말 준비되었나요?


이어진 패널토의에서는 각 분야의 교육 주체들이 ‘페미니즘 교육’을 둘러싼 고민과 과제를 이야기했다.


젠더교육연구소 이제(IGE)의 최기자 부소장은 “현재의 ‘폭력예방통합교육’이 ‘젠더’를 사라지게 하는 지점”을 지적했다. “개개인의 성평등 의식 개선, 성평등한 문화 확산에 방점을 둔 폭력예방통합교육이 (실질적으로) 젠더 권력구조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지기 어려운 점”이 고민이라는 것이다. 또한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가 교육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교육만능주의로 이어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도 언급했다.


학교에서 ‘성교육’, ‘여성학 입문’ ‘남학생을 위한 페미니즘’ 등의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제천간디학교 김수자 교사는 “풀이과정 없이 ‘정답’만 존재하는 교육, ‘안돼요, 싫어요, 하지마’가 아닌 무엇이 성폭력이며,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우리는 무엇을 사과 받고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가에 대한 교육이 논의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인 페미니즘의 인식론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인 정소연 학생은 학창 시절에 해야 했던 ‘양성평등 글짓기’ 경험을 토로했다. “여성의 힘든 점은 말할 게 너무 많았는데 ‘균형’을 위해 남성의 힘든 점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웃음) 근데 여튼 그걸 맞춰서 쓰면 항상 상을 받았어요.” “기계적인 평등을 강요” 받는 현실에 대한 지적이다.


정소연 학생은 “대학에서 마주한 성차별과 성폭력에 대한 절망과, 가이드라인 없는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결국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페미니즘을 찾아감으로써 해결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빨리, 더 어렸을 때 페미니즘을 접할 수 있는 사회”를 희망한다며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쳤다.


국민청원 20만 명 돌파로 청와대의 응답을 들을 수 있었지만, 그것이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청원의 최종 목표는 아닐 것이다. 초중고 인권교육 실태조사는 정말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예산을 들여 어떤 교육 자료를 만드는지 지켜보고 끼어들어 목소리를 내야 한다. 페미니즘이 교육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왕성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사우디에선 ‘노예’와 같았고, 독일에선 ‘갇힌 신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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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선 ‘노예’, 독일에선 ‘갇힌 신세’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말하기>


독일에서 살고 있는 난민여성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베를린의 정치그룹 국제여성공간(IWSPACE, International Women Space)이 제작한 <우리 자신의 언어로?독일 난민 여성들의 이야기>에 수록된 내용으로, 이주여성과 난민여성으로 구성된 팀이 다른 난민여성들을 인터뷰하여 1인칭 에세이로 재구성한 것이며 하리타님이 번역, 해제를 달아 소개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는 노예와 같다고 느꼈고, 독일에서는 갇혀버렸다”(In Saudi Arabia I felt like a slave, in Germany I am trapped) 편의 화자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보도합니다. [편집자 주]


남자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 벽을 본다. 내 방 창문을 통해 보이는 벽이다. 중요한 물건들은 항상 가방에 싸 둔다. 알디(슈퍼마켓 체인)에 갈 때마다 내게 필요할 만한 물건이 있나 찾아보지만 사지는 않는다. 독일 당국이 나를 강제 송환할 때 뭘 많이 들고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나는 종교국가이자 독재정권이 다스리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 의회가 있고, 여자들도 운전할 수 있고, 남녀가 같이 일하는 직장이 있는 이란과는 비교가 안 된다. 사우디에서는 어떤 문제에 대해 집단으로 항의할 수 없다. 모두가 혼자 항의한다. 집회나 결사는 범죄이다.


이곳에 와서 나는 무척 외롭다. 이란인도 아프간인도 아닌 사우디 사람으로서, 나는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지내본 경험이 없다. 사우디에서 여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선 남자는 시민이고 여자는 노예나 마찬가지다. 여성이 공부하고, 일하고, 결혼하려면 남성의 허락이 있어야만 한다. 내게 방을 빌릴 돈이 있다 해도, 내 이름으로 계약할 수 없다. 문서에 서명을 하려면 언제나 남자가 필요하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나 마찬가지다. 운이 좋으면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예컨대 남자들은 그들이 원하면 언제라도 나를 직장에서 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손쉽게 말할 수 있다. “그만하면 됐어.”


▶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운전을 금지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국가였다. 2017년 6월 살만(Salman) 국왕이 여성에게 운전면허 발급을 허용하라는 왕령을 발표하면서 비로소 상황이 바뀌었다. 올해 6월, 본 왕령을 집행하기 위해 내각에 별도 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아미라(Ameerah Al-Taweel) 공주와 같은 최상류층 여성부터 부르카 쓴 풀뿌리 액티비스트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싸운 끝에 이룬 결실이다. (이미지 출처: A taste of freedom in Saudi Arabia (DW) 유튜브 영상 캡쳐)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는 나를 어머니에게서 떼어놓았다. 어머니와 의논조차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상상해보라! 아버지는 그저 그럴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였다. 어머니는 몇 년 동안이나 나를 못 만나고 지냈다. 만약 어떤 여자가 어머니와 쭉 함께 살며 학업과 취업, 결혼과 이혼 다 거쳤는데, 어느 날 아내 넷을 둔 아버지가 자기 집으로 와서 같이 살면서 생활비를 책임지라고 하는, 그런 일이 생길 수 있다.


혹은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그 여자의 아버지는 말한다. “아니, 안 된다.” 이미 기혼인 상태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편의 가족을 좋아하지 않는 오빠가 그 여자에게 이혼을 명령할 수 있다. 남편과 함께 잘 살고 있어도 오빠가 주인이다. ‘좋은 노예’로 살아야 한다. 남자들은 그들 뜻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알던 21살의 한 여성은 헌신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하지만 일을 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에게 허락을 구해야 했다.


2003년 개혁 이후에도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언론의 자유가 없었다. 정부는 처음 몇 년 간은 개혁의 필요성에 동의했지만, 나중에 마음을 바꾸고 사람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정부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했다. 사우디에선 내게 아무런 기회도 없다. 나는 더 이상 이슬람교 신자도 아니다. 돌아가서 계속 노예처럼 살아야 할까봐 겁이 난다. 나는 이미 떠나왔는데, 지금 돌아간다면 정부는 내 여권을 보고 내가 몇 년 떠나있었음을 문제 삼을 것이다. 변명의 여지도 없이, 그들은 우리 가족을 모욕할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집트나 레바논 같지 않다. 날 체포할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목이라도 잡아내면, 나도 벌을 받고 우리 집안 남자들도 받을 것이다. 여성인 나는 인간이 아니고 따라서 책임의 주체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다른 이들도 함께 처벌한다. 가족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어떤 것도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집안 남자들이 처벌받길 바라지 않는다면 여자들은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들은 좀 더 강인하다. 집회를 하다 잡혀도 또 다시 모인다. 그 외 보통 사람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사우디 남자가 사담 후세인 시절에 이라크에 갔다가 비행기 납치 사건(9.11테러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됨)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로 붙잡힌 적이 있다. 경찰이 그 남자의 아버지를 찾아가자, 아버지는 “나는 이 사람을 모릅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우스운 것은 사우디 정부가 ‘인권’을 운운한다는 것이다. 대체 누구를 상대로 그럴까?


▶ 미국의 동맹국이자 대표적인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UN과 같은 국가 간 연합기구에서도 이른바 ‘특혜’를 받아왔다. 사우디 독재정권이 나라 안팎에서 국제인권 조약에 어긋나는 행위를 일삼아도 ‘정의의 심판자’ 강대국들은 자기네 이해득실을 따지느라 관대한 처분을 내린다. 인권 수호를 외치는 국제 사회에 호소하던 힘없는 민중들은 또다시 절망한다. (만평 출처: LATUFF 2016)


나는 자유를 원했지, 갇혀있길 원한 게 아냐


여기 오기 전에 나는 인권에 대해 논하는 곳이라는 제네바(스위스)에 대해 들어본 적 있다. 나는 유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노르웨이로 갈까 생각해봤지만, 거긴 해가 잘 안 뜬다. 독일에는 햇살이 좀 있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다. 나는 자유를 원했고 안전한 장소를 원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내게 지옥이다. 더 이상 독일에 있고 싶지 않다. 독일이 경제적으로 나를 지원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여기서는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만 있고 그 다음에는 인도나 아프리카 어딘가로 가고 싶다. 거리에서 잘 각오도 되어있다.


나는 안전하게 살고 싶었지만 항상 갇혀있길 원한 건 아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게 무섭다. 나나 우리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나는 우리 가족을 정말 사랑한다. 아마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들을 못 볼 지도 모른다. 여기 온 이래로,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다. 잃기만 했다. 전에는 우리나라에 갇힌 처지였고, 지금은 여기 독일에서 갇혀 있다. 마찬가지 상황이다. 나는 사전에 허가를 요청하지 않고서는 아무데도 갈 수 없다.


※ 난민들은 실제로 어떤 숙소에서 얼마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보통 망명 신청 절차에 따라 숙소가 배정된다. 독일 영토에 들어온 난민이 맨 처음 가게 되는 곳은 ‘도착센터’ (arrival center)다. 국경 지대를 비롯해 베를린, 뮌헨과 같은 대도시 공항과 기차역에 있는 이 센터에서 지문 채취 등 신원 등록을 하게 된다.


등록 후 도착 증명서를 발급받은 사람은 1단계 수용시설(reception facility)에 배정된다. 배정 기준은 출신 국가, 동반 가족 유무, 각 주별 할당 현황 등이다. 원칙적으로는 6개월까지 1단계 숙소에 머물지만, 다음 단계 시설에 자리가 없거나 망명 가능성이 낮을 경우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내는 경우도 많다. 난민 유입이 과열되었던 2015-2016년에 동원할 시설이 부족해서 공공기관이나 학교 체육관, 공터에 세운 대형천막촌이 긴급 쉼터 역할을 했다. 지금도 1단계 시설에서 지내는 난민들의 생활의 불편과 고통이 가장 크다.


2단계 숙소는 전문수용시설(competent reception facility)로 시/군의 재량으로 마련하는데, 기존 시설을 임대-매입하거나 새로 짓기도 하고 사설 숙박업소에 위탁하기도 한다. 숙소가 필요한 난민들과 일반 가정집을 매칭하고, 이 홈스테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편 지역정부도 있다. 2단계에서는 음식, 현금, 의류, 의료서비스, 개인위생 및 생필품도 숙소와 함께 제공된다.


3단계 연결숙소(connection accommodation)를 지원하는 남서부 바덴-뷔템베르크(Baden-Wurttenberg) 주에서는 난민 가구별로 자율성과 사생활이 보장되는 소규모 독립 주택을 보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 대부분 주가 2단계까지만 시설을 구분하고 베를린, 함부르크, 브레멘 등의 대도시에서는 심지어 1단계만 운영한다.


한편, 화자가 불편을 호소하는 이동권 관련 현실은 어떨까? 원칙적으로 난민들은 행정구역 상 숙소가 위치한 구역에서만 자유롭게 통행할 수 있다. 특별한 사유가 있어 그 밖으로 외출하거나, 2-3일 단기 여행을 가는 것은 사전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독일에 남을 가능성이 적은 망명 신청자들에게는 이렇게 제한된 이동권이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망명 가능성이 높은 난민들은 3개월이 지나면 독일 전역으로 확대된 주거 및 이동권을 갖게 되기도 한다.


▶ 2015년, 쏟아지는 난민들의 처우와 관련하여 유럽 국가들에선 난민 수용을 환영하는 측과 반대하는 측의 대규모 시위가 잇따랐다. 사진은 네덜란드 코펜하겐에서 난민 수용과 지원을 촉구하는 시위대 모습. (pixabay.com)


나는 우리나라에서 온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싶다. 나는 떠난다는 얘기를 단 몇 명에게만 했다. 직장 동료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사우디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 세상에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목소리를 내 보려고 노력하지만 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난민 심사 당국은 내가 겪은 일에 대한 증거를 달라고 한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신분증, 기억속의 사건들, 여권-을 주었다. 사람들은 보통 모국을 급히 떠나올 때 그동안 겪은 일의 증거를 모으지 않는다. 그냥 떠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의 처지가 어떤지는 모두가 안다. 나는 떠날 때 오빠의 서명이 필요했고 여행 허가 서류도 있어야 했다. 이것들이 증거 아닌가?


그들은 내 수중에 돈이 꽤 있다는 것은 알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 돈은 있다. 나는 내가 난민으로 인정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뜻밖에도 내 신청서는 거부되었다.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아무 희망이 없다.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심사 당국이 공정하고 논리적이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크나큰 실망 뿐. 난민 요청이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특히 독일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동맹국이다. 따라서 사우디 사람이 난민으로 인정받기는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8월, 난민 심사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들은 날은 끔찍한 하루였다. 지금 나는 항소중이다.


※ 독일 난민법에서 규정하는 난민(refugee)을 보다 엄밀하게 분류하면 다음과 같다.


-망명 희망자(asylum seeker): 망명 신청서를 제출할 의도를 가지고 있으나 아직 서류 접수를 하지 않은 자

-망명 신청자(asylum applicant): 망명 심사 및 행정 처리를 기다리고 있는 자

-4가지 형태의 난민보호에 따른 분류:

1)망명자: 3년 체류권 보유, 총 거주 기간 3-5년 뒤 영주권 신청 가능, 제한 없는 노동 및 가족재결합 가능 

2)난민 보호(refugee protection) 대상자: 망명자와 동일한 조건 

3)보충적 보호(subsidiary protection) 대상자: 1년 체류권, 이후 2년씩 연장 가능, 총 거주 기간 5년 뒤 영주권 신청 가능, 노동권 보장, 가족재결합 불가능 

4)강제송환금지(national ban on deportation) 대상자: 최소 1년의 체류권, 이후 1회 이상 연장 가능, 총 거주 기간 5년 뒤 영주권 신청 가능, 사전허가를 전제로 노동 가능, 가족재결합 불가능


이를 바탕으로 보면, 망명 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난민 지위는 지속할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권리가 보장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만난 여성들은 대부분 최초 망명 신청에서 탈락해 재심을 청구한 상태였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망명자를 제외한 나머지 셋 중 하나의 난민 지위로서 체류권을 연장해왔을 것이다. 실제 망명 성공률은 20-30%에 불과하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나는 직장에 다녔다. 2년이 지난 지금은 내가 계속 일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내 분야에서는 끊임없이 기량을 향상시키고 공부를 해야 한다. 사우디에서 딴 자격증이 여기서 인정될지 아닐지도 모르겠다. 만약 된다 해도 그 동안 뒤쳐진 것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경력 인정이 되는지 알아보려고 서류작업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일을 아주 많이 했지만 더 이상 그러고 싶지는 않다. 2년 동안 일을 안하다보니 그 전에 얼마나 초과노동을 했는지 깨달았다. 뭔가를 실제로 하고 있을 때는 그게 비정상이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제 뒤돌아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어떻게 그러고 살았지?” “일을 지나치게 많이 했어.”


그저 기다리고 있는 삶, 이게 사는 건가?


독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군 막사가 있었던 지역 할버슈타트(Halberstadt)로 보냈다. 나는 다 잘 될 거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 한두 달은 잘 버텼다. ‘모든 게 잘 될 거야.’ 그러고 나서는 여기로 왔고, 거의 2년이 되었다. 이 숙소에 몇 명이 같이 사냐고 누가 물으면, 나는 답할 수 없다. 사람들 이름도 모른다. 나는 여기서 그저 기다리고 있다. 이게 사는 건가? 잘 모르겠다. 보통 인생이라고 하면 난민숙소에서의 삶을 의미하지는 않을 거다. 어쩌면 나는 그냥 가까스로 생존하고 있는지 모른다. 밤낮을 같은 장소에서. 지금까지는 희망이 없었다.


숙소의 관리자 누구나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다. 문을 따고 들어올 수 있다. 경찰도 들어올 수 있다. 그들은 강제 송환하려는 사람들을 데리고 나간다. 때로는 찾는 사람들이 이미 떠나고 없을 때도 있다. 한번은 방안에 다른 사람의 기척을 느껴 자다가 깼다. 혼자였던 나는 겁에 질렸다. 그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왔는지 말해주지 않고 여권만 요구했다. 그들은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처음 있었을 때, 나는 마약 불심검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누군가를 강제 송환하러 왔었다는 것이다.


※ 많은 난민들이 ‘강제 송환’(deportation)이라는 행정처분에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낀다. 사실 송환 조치가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앞서 살펴본 난민 케이스 네 가지 중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을 때만 송환일자와 함께 난민 불인정 고지가 나간다. 당사자는 법원에 최소 1회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재심 결과 역시 불인정인 경우에 망명 신청자가 송환일자가 지나도 출국하지 않을 때 이민당국이 경찰력을 동원해 연행한다. 난민들의 심리적 어려움은 따라서 자기 삶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에 주로 기인한다고 봐야한다. 사람의 의식은 과거-현재-미래라는 시간관념을 중심으로 하는데, 내일의 자기 삶을 예상하지도 계획할 수도 없는 것은 큰 혼란이자 고통인 것이다.


다른 날은 나의 변호사가 브레멘으로 가라고 했다. 그 사람은 독일어로 편지를 써서 보냈다. 독일 친구에게 그 편지를 보여줬다. 변호사는 나와 독일어로만 얘기한다. 나는 독일어를 조금밖에 못한다. 친구가 편지를 보고 그 사람과 얘기하고 나서 내게 설명해줬다. 편지 내용은 브레멘에 가야 하니 이틀짜리 외출허가를 신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 독일 친구가 나서서 외국인청과 실랑이를 벌인 다음에야 외출허가가 나왔다. 친구가 없었으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 베를린에 있는 이민-난민을 위한 연방정부기관 BAMF(Bundesamt fur Migration und Fluchtlinge) 표지판 (출처: spiegel.de)


나는 낯선 이와 스스럼없이 말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내 성격이다. 나는 좀 고립된 사람이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항상 무리지어 다닌다. 자기들끼리 모임이 있고, 나는 항상 외국인이다. 나는 외국인청과 학교와 숙소만 오간다. 외국인청은 난민들에게 정식 학업을 허용하지 않지만, 유로슐레(Euro-Schule; 난민 대상으로 문화 통합교육을 제공하는 사설 기관. 정부 지원을 받음)에는 다닐 수 있다. 숙소에는 인터넷이 없다. 있었더라면 독일어 온라인 수업을 들었을 것이다. 여기 인터넷이 깔린다면 15-20유로 가량을 우리보고 내라고 할 것이다.


나는 언어 때문에 독일 사회에 연결될 수가 없다. 하지만 단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왔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와 가까워지지는 않을 것이다. 전적으로 언어 때문이 아니더라도, 다른 문화와 언어권에서 온 사람들과 사는 것이 항상 쉽지는 않다. 내게는 이집트 채널이 나오는 티브이가 있다. 이집트 방송은 좀 우스꽝스럽다. 정치 뉴스도 볼 수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좀 친숙한 것, 내가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것을 보고 듣는 것뿐이다.


난민 심사에서 탈락한 후에 나는 모든 의욕을 잃었다. 독일어를 배우거나 번역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래도 별로였던 독일어가 더 형편없어 졌다. 어떤 일에도 의욕이 남아있질 않다. 작은 쥐가 된 기분이다. 내게는 이 이집트 티브이 채널과 친구들과 얘기할 페이스북밖에 없다. 나는 이미 감옥에 있다. 바깥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은 이것들뿐이다.


얼마 전부터 술을 마시고 있다. 슬픔을 극복해보려고 매일 마셨다. 난민 신청에서 떨어지고 난 뒤에는 더 심해졌다. 하지만 술을 마실수록 점점 더 우울해지는 걸 깨닫고 최근에는 매일 마시는 것은 끊었다. 이제는 그냥 즐기려고 일주일에 두 번만 마신다. 스스로 조절을 하고 있다는 건 다행이다. 나는 음악을 좀 다른 방식으로 느낀다. 나는 와인만 마시는데, 와인을 마시면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다.


이 우울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다. 새삼스러울 것 없이, 나는 우울하다. 어쩔 때는 새벽 1시에 일어나 “대체 뭐가 문제지?”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때로는 내가 공항에 가 있는 악몽을 꾼다.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나는 겁쟁이다. 자살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럼 여기서 자유로워질 텐데. 목을 메달 생각도 해본다. 권총을 쓸까도 싶지만 어디서 구할지 모르겠다. 알약도 가능할 텐데, 그것도 어디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무도 날 돕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데도 사람들은 그냥 살라고 한다. 이 모든 걸 끝내기 위해 달리는 기차 앞에 뛰어들까도 생각해본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


여기서 얼마나 더 오래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여기서 하루하루 서서히 죽어간다. 우리는 늘상 인권을 외치는 프로파간다를 듣는다. 하지만 여기엔 그런 것 따위 없다는 것이, 바로 내 눈 앞의 현실이다.


<번역자 노트> 암울한 여성들의 현실을 응원하고 낙관하는 방법


독일에 체류하는 여성 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본 프로젝트가 어느덧 중반으로 접어들었다. 앞선 네 여성들은 끔찍한 일들을 겪고도 살아남아 굳건한 의지로 내일의 삶을 그려보는 이들이었다. 부모와 형제자매, 자녀를 돌보는 이들이고 젠더, 민족, 지역에 근거한 억압과 차별에 맞서 더 나은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는 액티비스트들이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오히려 내가 힘과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의 화자는 좀 다르다. 한눈에 알겠다. 이 사람은 삶의 벼랑 끝에 있다. 그녀의 말 마디마다 현재진행형의 불안과 좌절, 우울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고 한다. 어떻게 그 삶을 끝낼지 방법을 찾고 있다고 한다.


수화기 너머로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의 울음소리를 들은 사람처럼, 나는 걱정스럽고 다급한 심정이 되어 자료를 뒤지고, 전화를 걸고, 이메일을 썼다. ‘자살충동을 일으키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거야. 그 마음을 짐작해 봐야해’, ‘난민숙소는 아직도 정말 그리 열악할까’, ‘난민들의 생활 여건을 속속들이 알아야 제대로 지지도 할 수 있는데, 내가 그동안 게을렀어.’ 원문이 발표된 이래(2015년)로 이 사우디 여성이 어떻게 되었는지 직접 알 수 없다면, 이 사람을 좌절케 한 법제도 및 환경이 지금은 더 나아졌는지라도 확인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화자는 사우디아라비아라는 젠더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스스로를 노예 상태라고 인식하고 주거, 여행, 교육, 노동, 결혼, 사유재산에 있어 자기 결정권을 찾고자 차라리 난민이 되어 탈출을 감행했다. 그러나 독일에 와서도 자신의 염원이 몇 년째 실현되지 않고, 난민을 보호, 관리, 통제하는 국가/국가 간 시스템에 의해 또 다른 예속 상태가 되고 말았다. 제네바로 상징되는 서구 유럽의 ‘인권’에 배신감도 느낀다. 이는 이미 충분한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인다. 실제로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마인츠, 베를린 대학병원들이 독일의 여성 난민 650명을 대상으로 공동 실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2017년 2월 발표), 응답자의 54%가 일상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불안, 울고 싶은 기분, 슬픔을 느끼는 비율도 각각 80%를 넘었다. 자살충동을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13%였다.


독일 난민 관련 당국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 여성 난민, 특히 젠더 박해를 사유로 한 망명 신청자들을 위한 심리 상담과 치료 지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그런데 문화 간 심리치료(intercultural psychotherapy)가 아직 미흡한 상황이다. 심리치료사는 환자(내담자)의 출신 문화와 질환, 생애 특성을 깊이 이해하고 소통해야 한다. 환자에게 이주 배경이 있는 경우에는 그 문화에 대한 별도의 이해와 더불어 더 개방적이고 사려 깊은 태도로 임해야한다. 이른바 ‘다문화 역량’(intercultural competency)이 부족한 치료사는 모든 것을 문화 차이로 환원시키거나, 반대로 차이를 무시하는 실수를 흔히 저지른다. 이는 결국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이어져 내담자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된다. 또한, 치료사들이 특정 질환과 관련해 익히 알고 있는 환자의 반응패턴(행위, 저항, 방어기제 등)은 상대가 이주민, 특히 난민일 경우 그 특수한 삶의 경험과 문제 때문에 적용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한편, 나는 글 속에 나타난 화자의 삶의 공간에도 주목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빛을 쫒아 창문을 바라보지만 그녀에게 보이는 것은 다만 벽이다. 항시 짐을 꾸려놓아야 한다. 항상 갇혀 있는 듯한 기분이다. 숙소 근방으로 나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사전에 허가를 구해야 외출할 수 있다. 항상 감시당하는 기분이다. 한밤중에 누군가가 예고 없이 방으로 들이닥친 경험을 실제로 했다. 이처럼 화자에게는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진정한 집이 없다. 국가라는 관념의 집, 나고 자란 동네와 가옥을 버려야 했던 이 여성은 몇 년째 집을 갖지 못하고 있다.


집다운 집 없이 살아가는 이의 마음이 어떨지 짐작이 가면서도 자료를 또 찾아본다. 앞서 언급한 연구팀에서는 7개의 소규모 여성 난민 그룹을 대상으로 심층 면접도 실시했다. 난민 여성들이 자신들의 현재 처지와 희망사항, 미래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면접의 주된 내용이었다. 규모가 작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일반 주택 형태의 숙소에서 지내는 여성들은 트라우마 경험에도 불구하고 앞날을 긍정하며 자아실현 욕구를 많이 드러냈다. 반면, 통제가 심한 대규모 단체 수용시설에 머무는 이들은 상황이 정체되었다고 인식하고 기본적인 욕구의 실현에 주로 집중했다. 연구자들은 이를 바탕으로 난민들이 독일 도착 후 최초로 머무는 숙소(arrival center/reception facility)의 환경이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잠금장치가 있는 별도의 침실과 성별 분리된 화장실이 표준 규정이 되어야 하며, 여러 가구가 공동으로 한 집에 배정될 경우 취사시설 외에도 별도의 아이돌봄시설이 있어야 한다고 권고한다.


▶ 2017년 6월 발표된 유니세프 난민 주거 환경에 관한 가이드라인 보고서 표지 (출처: UNICEF)


난민 주거 환경에 대한 담론은 최근 몇 년 사이 독일과 캐나다 같은 적극적 수용 국가들을 중심으로 발전되어 왔다. 2016년 봄, 독일 연방정부의 관련 부서(German Federal Ministry for Family Affairs, Senior Citizens, Women and Youth)와 유니세프가 최초로 가이드라인(Minimum Standards for the Protection of Refugees and Migrants in Refugee Accommodation Centres)을 내놓았다. 이듬해에는 난민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보충 조사를 통해 성소수자(LGBTIQ)와 장애인을 고려한 확장 기준안을 발표했다. 이 가이드라인은 난민 수용시설의 디자인과 운영, 관리감독과 보호 방안을 다루고 있는데, 성폭력과 인권침해 가해자로 지목되었던 시설 운영인력에 대한 관리 원칙도 포함했다.


이 글을 번역하며 조사를 막 시작했을 때 절박하고 비관적이던 내 마음은 조금은 누그러들었다. 비록 각종 문제 해결책들이 아직 연구와 보고서, 소규모 프로젝트에 머물러 있을 지라도 그 뒤에 있는 사람들, 집요한 선의와 성실한 역량을 발휘하는 많은 이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도 오늘, 이 사우디 여성의 삶을 조심스레 낙관해본다. 한숨과 눈물로 찍은 마침표 바깥으로 그녀의 삶은 매순간 쉼 없이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희망의 징표가 없지 않다. 끝을 상상하면서도 음주 습관을 스스로 조절하고, 가망이 없다면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꺼낼 힘은 어디서 나오겠는가.


더불어 그녀가 남겨두고 온 고국의 여성 동료들의 삶 또한 나는 감히 낙관하고 싶다. “직장 동료에게 말했을 때, 그녀는 사우디 여성들의 처지에 대해 세상에 얘기해달라고 부탁했다”는 말처럼, 여성들은 수많은 억압과 굴레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체념한 적이 없다. 나와 뭇 독자들에겐 ‘나라면 그런 데서 절대 못 살아’를 연발케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현실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꿋꿋이 살고 있다. 우리와 다름없이 다양한 외국 서적과 문화콘텐츠를 접하고, 여행을 다니고 무엇보다 인터넷을 하며 금 밖의 ‘세상물정’을 익힌 그녀들. 답답할텐데, 억울할텐데 그저 가만히 있겠는가.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거기서도 무시해야할 목소리다. 자기 목소리로 자기 몸으로 직접 헤엄쳐 나오는 수밖에 없다. 사우디 여성들은 오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저항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상상하고 또 확인한다.


“목소리를 내 보려고 노력하지만 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이 한 말이다. 우리는 여기 답해야 한다. 두려운 것 압니다. 두려워도 괜찮습니다. 다만 두려움이 침묵이 되게 하지는 마세요. 두려워도 계속 이야기해 봐요, 내가, 우리가 당신을 응원합니다.


※ 이번 조사에 도움을 준 사비나 라블(Sabine Rabl)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를 전한다. 라블씨는 뮤라커(Muhlacker) 군청에서 별정직 난민담당관으로 일하며 해당 지역 ‘3단계 숙소’ 시스템을 관리하고 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참고문헌]

-“The stages of the German asylum prodedure” (Federal Office for Migration and Refugees, 2016) https://bit.ly/2jrU58D

-“Minimum Standards for the Protection of Refugees and Migrants in Refugee Accommodation Centres” (Unicef, 2018) https://bit.ly/2ssXd7y

-“Frauen und Flucht: Vulnerabilitat - Empowerment - Teilhabe” (Heinrich-Boll-Stiftung, 2018) https://bit.ly/2kLBlzV

-“Study on Female Refugees: Reprasentative Untersuchung von gefluchteten Frauen in unterschiedlichen Bundeslandern in Deutschland” (Die Beauftragte der Bundesregierung fur Migration, Fluchtlinge und Integration) https://bit.ly/2BcdEI5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목소리를 직접 접할 수 있는 영상]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들: 조용한 혁명(DW) https://bit.ly/2iJoIEn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자유의 맛을 보다(DW) https://bit.ly/2HhoWwx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Sukkari Life) https://bit.ly/2suHIvR

-사우디 공주, 여성 인권 문제에 힘을 싣다(Forbes) https://bit.ly/2HitDpY



비난과 낙인 속의 환자들, HIV감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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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과 낙인 속의 사람들, HIV감염인

후천성면역결핍증에 대한 20-30대 당사자 인식 조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OOO이라는 걸 알면 함께 있는 걸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OOO이라는 사실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연애하는데 방해가 된다’, ‘내가 OOO이라는 걸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OOO이라는 사실보다 주변에서 듣는 OOO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나 자신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감히 누군가를 좋아해도 괜찮을까 자책하고, 나의 행동을 탓하는 주변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경험은 사회의 소수자/약자들이 비슷하게 겪는 경험이기도 하다. 누가 더 사회적 소수자인지 나누는 건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현재 사회에서 ‘눈에 덜 보이는/드러나지 않는 부류가 있다면 그건 누구이고 왜인가?’에 대해 논의하는 일은 중요하다.


러브포원에서 연구한 ‘HIV/AIDS에 대한 20~30대 HIV감염인의 인식 조사’ 결과가 발표된 자리에선 잘 드러나지 않았던 HIV 감염인과 AIDS 환자에 대한 몇 가지 주요한 이슈가 제기됐다.


이 조사는 2017년 11월부터 12월까지 약 56일간의 설문조사를 거쳐 얻어낸 응답을 분석한 것이다. 응답자 198명 중 20대가 51.5%, 30대가 48.5%, 남성이 96%, 여성이 4%였고 확진 경과기간은 1년 미만이 18.7%, 1~3년 미만이 30.8%, 3년~10년 미만이 40.9%, 10년 이상이 9.6%였다.


▶ 미국의 질병관리본부(CDC)는 HIV/AIDS 감염인들이 겪고 있는 낙인과 배제를 이겨낼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고, 치료약 복용을 강조하면서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출처: CDC 홈페이지)


가장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은 ‘나를 탓하기’ 


처음 언급했던 OOO의 말들은 ‘HIV 감염 사실에 대한 인식’에서 높은 응답률을 보인 항목이다.(복수응답)


-HIV 감염 사실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연애를 하는데 방해가 된다. (97%)

-대부분의 사람들은 HIV에 감염된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것이다. (91.4%)

-나는 감염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89.4%)

-HIV 감염이 되었다는 사실보다 주위에서 듣는 AIDS에 대한 혐오나 비하 발언이 나를 더 힘들게 한다. (87.9%)


HIV 감염인이 겪는 낙인에 대해 발표한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는 “HIV 감염인들이 감염 사실로 느끼는 감정은 ‘나를 탓하기’(74.7%)와 ‘죄책감’(66.7%)’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낮은 자존감(60.6%)과 수치심(55.1%)가 뒤를 이었다. 이는 HIV 감염 사실에 대한 내재적 낙인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혐오 표현으로 쓰이고 있는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 걸려 죽는다’, ‘HIV 감염인은 세금도둑’이라는 말에 대한 인식을 물은 항목에서는 “화가 나고 속상한 감정이 든다”가 각각 74.6%, 76%으로 가장 높았다. 한채윤 상임이사는 “가능한 영향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50.8%, 51.5%)와 그런 표현을 하는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35.5%, 41.3%)고 응답한 비율도 적지 않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감염인들이 양가 감정에 놓여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한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힘이 든다(17.3%, 24%)와, 그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16.8%, 27%)라고 응답한 비율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성애 하면 에이즈 걸려 죽는다’보다 ‘HIV 감염인은 세금도둑’이라는 말에 더 상처와 자괴감을 느끼는 건, 타인에게 폐가 된다는 ‘죄책감과 나를 탓하기’가 HIV 감염인에게 크게 자리 잡은 감정이라는 것과 그걸 자극하는 것이 HIV 감염인을 더 힘들게 한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밝혔다.


HIV 감염인 ‘마음건강’ 상태는 예상보다 더 심각


자신을 탓하면서 한편으론 혐오와 싸워야 한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HIV 감염인들의 마음건강은 어느 정도일까? HIV 감염인들의 정신건강 상태와 관련된 설문 결과를 분석한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는 “생각보다 매우 심각한 수준”이라며 발표를 시작했다.


▶ 고려대학교 김승섭 교수의 발표 모습. (러브포원 제공 사진)


“한국복지패널 매뉴얼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라 우울증상 여부를 확인한 결과, 남성 HIV감염인 중의 52.4%, 여성 HIV 감염인은 62.5%가 우울증상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일반 인구집단(2017년 한국복지패널조사의 20~39세 기준)보다 약 3.5배와 약 4.8배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다만 김승섭 교수는 “여성 HIV 감염인의 경우 참여자가 8명이라는 점에서 여성에 대한 결과 분석에는 큰 제한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남성 HIV 감염인의 59.4%, 여성 HIV 감염인은 50%가 ‘있다’고 답했으며, 이는 일반 인구집단이 2.5%와 5.9%로 나오는 것에 비해 약 23배와 약8.4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 2013년 OCED에서 발표한 국가별 자살율 그래프 중에서. (출처: OECD Data 홈페이지)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을 계획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남성 HIV 감염인의 35.8%, 여성 HIV 감염인의 25%가 ‘있다’고 답했고 이는 일반 인구집단(2015년 국민건강영양조사의 20~39세 기준)의 0.8%와 1.6%에 비해 매우 높은 결과로 남성의 경우 약 44배 높다는 것”이라며 마음이 무거운 듯 말을 줄였다.


김승섭 교수는 또 “‘지난 12개월 동안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남성 HIV 감염인의 11.8%가 ‘있다’고 답했으며, 이건 일반 인구집단의 0.3%보다 약 39배 높다”고 밝혔다. 그리고 “특히 한국이 OECD 국가 중 자살율 1위라는 걸 생각한다면 이 결과는 정말 문제적인 수치”라고 분석했다.


낙인과 배제는 이제 그만! 인권의 관점 필요한 때


김 교수는 “HIV 감염인 1만명 중 10%가 넘는 약 1천명이 자살 시도를 한다는 것이고, 하루에 약 2~3명이 자살 시도를 한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우울증이 증가하면 지속적으로 먹던 치료약도 챙겨 먹지 않게 되기도 한다”며 “이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라며 물음을 던졌다.


또 “6차 세계가치조사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 중 HIV/AIDS 감염인을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말한 비율이 88.5%였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배제와 차별을 꼬집었다.


▶ 6차 세계가치조사 한국 편,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항목 결과’ (WV6 Results South Korea 2010 참조)


많은 사람들에게 HIV나 AIDS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 질환이거나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원 이용이 어려운 이유’에 대해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76.5%), ‘진료 기록이 남을 것 같아서’(65.1%)라고 답한 결과나, ‘치료제 복용을 지키지 않은 이유’를 ‘나쁘거나 늦잠을 자는 등 복용 시간을 깜박 잊어서’(68.7%), ‘약 먹을 때 다른 사람이 옆에 있어서 감염 사실을 타인이 알게 될까봐’(49.6%), ‘약을 분실하거나 외출 시 약을 챙기지 않아서’(45%)라고 답한 걸 보면, 개인적인 경험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부인과 질병으로 산부인과에 가거나 피임약을 꼬박 챙겨 먹는 등의 ‘쉬쉬하며 숨겨야 하는 일’을 겪어야 했던 여성들의 경험들과도 닮아 있다.


무엇이 감염인들을 그렇게 특별한 존재, ‘배제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고 있을까? 지난 달 15일, EBS에서 국내 최초 젠더 토크쇼를 표방한 <까칠남녀>를 폐지한 것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인권침해·차별 진정서를 제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곳에선 “항문성교는 동물이나 하는 거다”라고 외치며 행사를 훼방 놓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러한 주장은 단지 혐오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는 구호다.


김승섭 교수는 HIV 감염과 공중보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돈 오페라리오 브라운대학 교수를 만나 이야기 나눴던 경험을 전했다. “돈 오페라리오 교수는 HIV에 감염된 개개인을 비난하는 간편한 해결책을 경계해야 한다며, 공중보건 예방 관점에서 보면 그건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것이고 ‘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개개인을 비난하는 간편한 해결책을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 더 가깝게 와 닿는 건, HIV/AIDS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배제, 차별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낙인과 배제, 차별에도 해당되기 때문일 것이다.


개개인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비난과 낙인을 끌어안아야 하는 상황을 종식시키기 위해,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에 대한 더 많은 분석과 함께 ‘왜 이러한 혐오가 어떤 집단을 향해 행해지고 있는가’에 대해 성찰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자리였다.


인식조사 결과 발표가 끝난 후 질의응답과 참가자들 간의 논의 자리에서 나왔던 “이 조사에 포함되지 못한, 커뮤니티에 소속되지 못한 감염인들이 아직 많을 것”이라는 말이 다음 과제를 남겼다. 성 산업과 관련되었거나 더 음지에 있는 감염인들의 실태 및 인식 조사도 앞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앎, 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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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차별, 성폭력을 해결하는 경험이 민주주의다

부처님 오신 날 실상사 ‘말하기 대회’를 돌아보며



부처님 오신 날, 실상사에서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 말하기 대회’를 한 지 몇 주가 지났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도 같고, 아무 일이 없었던 듯도 하다. 무슨 말을 했던 듯도 하고, 들었던 듯도 하다. 우리는 그날 실상사에서 만나기까지 어떤 풍경을 지나쳐 왔으며, 그 이후 어떤 광경을 만들어 왔는가. 이 글은 밝은 눈과 섬세한 귀를 동원해, 지나가는 ‘아무 일’을 잡아채 ‘여기’에 잡아두기 위한 기록이다.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 여성회의’가 만들어지다


2017년 겨울, 실상사 어린이법회 순례행사에서 아동 성추행으로 추정되는 일이 생겼다. 눈밝은 목격자들은 그 행동을 즉각 저지했다. 그리고 일상적으로 당연히 여겨지던 행동들을 성평등 관점에서 다시 살펴보고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실상사에 문제 제기를 했다.


이 과정에서 목격자를 비롯해 마을에서 페미니즘을 공부하던 사람들, 성폭력예방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들, 여성학자들이 참여해 피해당사자와 실상사 간 중재 역할을 맡아 해결책을 논의했다. 그리고 마을에 이미 벌어진, 혹은 앞으로 벌어질 지도 모르는 성폭력 사안을 공론화하고 논의를 진행시킬 수 있는 공적 기구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우리는 그 이름을 ‘성폭력 근절을 위한 지리산 여성회의’(이하 지리산 여성회의)로 정했다. 앞으로 마을에서 벌어지는 성차별, 성폭력 사안들을 공론의 장에서 토론하고, 필요하다면 성평등 교육과 피해자 상담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실상사에서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 말하기 대회’를 기획하다


실상사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실상사는 사부대중을 대상으로 젠더감수성 교육을 실시하고 피해당사자에게 정중한 사과를 하였으며, 지리산 여성회의가 피해자 상담을 지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마침 사회적으로 미투(#MeToo) 운동(‘나도 당했다’를 넘어선 ‘나도 말한다!’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실상사와 젠더감수성 교육 등 후속 작업을 하기 위한 논의 자리에서 주지스님은 “숙박 등을 비롯한 물적인 토대는 실상사가 제공할 것이니, 여성회의 마음껏 하고 싶은 주제로 대중공사(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를 기획해 보라”고 제안하였다. 지리산 여성회의는 논의 끝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실상사에 모이는 부처님 오신 날 봉축행사가 끝나고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 이어말하기’ 행사를 하기로 기획했다.


▶ 말하기 행사를 안내하는 부스 ⓒ지리산 여성회의


이어 실상사 살림위원회와 행사 명칭과 형식을 조율하였으며, 웹자보를 만들고, 피해경험 말하기 연단에 설 참가인원을 모집하고, 부스를 기획하고, ‘경청의 자세’ 안내문을 만드는 등 행사를 준비해나갔다.


5월 22일, 부처님 오신 날 말하기 대회


봉축행사가 끝나는 것은 12시, 말하기 행사는 오후 한 시로 예정되어 있었다. 명부전 뒷뜰 느티나무 아래 50여개의 흰 의자를 배치하고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것으로 준비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한 시가 되었는데도 자리에 앉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서너 분의 어르신이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 이어말하기' 안내문  ⓒ지리산 여성회의


그러나 사회자가 ‘시작한다’는 멘트를 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속속 자리가 찼다. 준비한 50여장의 안내문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지리산 여성회의 식구들이 하나 둘 연단에 올라 개인적인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을 비롯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말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스러웠는지, 얼마나 간절히 자유와 평등을 바라는지, 수단과 대상이 아니라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받기를 원하는지,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모두가 귀 기울여 들었다. 누구도 중간에 행사를 저지하거나, 본인이 마이크를 잡으려 하거나, 불필요한 추임새를 넣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분위기는 진지했으며, 끝나는 시간인 세 시가 가까워올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기 위해 자리를 함께 했다.


단상, 연단, 마이크…‘말한다’는 것


이제부터는 개인적인 기록이다. 나는 두 번 마이크를 잡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리산 여성회의 대표를 맡게 되었을 때 ‘피하지 않겠다’고 마음먹긴 했으나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기’는 영 낯설고 하기 싫은 일이었다.


처음에는 매끈하게 정리된 연설문도 없이, 떨리는 목소리로 두서없이 여성회의를 소개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인근 학교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개입한 경험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경청자로 참여한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언제 오셨는지, 가장 뒤쪽 자리에 가장 작은 모습으로 앉아 계신 도법스님도 보였다. 멀리 명부전 돌계단에 주욱 앉아 온 몸으로 듣고 있는 친구들과 마을 사람들도 보였다.


▶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 말하기 대회 현장 모습 ⓒ지리산 여성회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사람들은 듣는 것으로 응답했다. 그 순간의 새롭고 단단한 느낌이 온 몸에 감각되었다. ‘이 감각은 뭐지?’ 싶었다.


얼마 전 문화예술공부의 일환으로 여자들 몇 명이 옷을 모두 벗고 밖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준 적이 있다. 그 때 알았다. 옷이란 것이 부수적이고 불필요하다는 걸. 생긴 그대로의 서로의 몸은 지극히 아름답다는 걸. 맨몸으로 맞는 바람은 생생하고 시원하며, 바람을 가르는 맨몸의 움직임은 거침없다는 걸. 남의 시선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마이크를 잡고 말할 때의 느낌도 그랬다. 껍데기는 다 가고 알맹이로 서서 진짜를 말하는 느낌. ‘주체’로 만들어지는, 혹은 주체로 섰을 때 뿜어나는 기운들. 말한다는 것이 이리 힘이 클진대, 남자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얼마나 손쉽게, 저절로 주어지는가에 생각이 미쳤다. 그들은 주체로 키워지는구나. 그러니 저렇게 (아무 이야기라도) 확신을 가지고 막 말하는구나.


연단에 서지 못한 남성은 그래서 아랫사람, 여자, 아내, 자식 앞에서 자연스럽게 윗자리를 차지하고 ‘말하기’에 중독되는구나. 여자들은 더 많이 말해야 하는구나. 그래야 기울어진 운동장을 조금이라도 평평한 쪽으로 옮길 수 있겠구나. 아무리 많은 여자들이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몇 천 년 동안 쌓아온 기울기가 평평해지기는 참 어렵겠구나. 더 많은 말하기가 필요하겠구나…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앎, 여성주의


그 날 저녁, 급체를 했다. 스무 번도 넘게 토하고 몸의 모든 것이 빠져나가듯 설사가 났다. 몸이 변하고 있었던 것일까? 기진맥진 탈진해 누웠으나 머릿속은 오히려 명징했는데, 나는 이제 더 이상 누구의 어떤 대상이나 수단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연단에서 못 다한 말이 생각났다.


나는 일상에서의 성차별, 성폭력 경험들을 삭제하지 말고 공론의 의제로 다루자고 말했다. ‘지리산댐’, ‘전쟁반대’보다 성평등 의제가 더 중요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했다. 잇지 못한 뒷말은 이것이다. ‘사적인 사건’으로 공론 영역에서 제외하고 누락했을 때는 지금처럼 매 사안을 매번 처음인 것처럼 당황하며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학교에서, 마을에서 발생한 성차별, 성평등 문제를 공론의 영역에서 제대로 다루었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공동체에 쌓이게 되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길이라는 것. 그러므로 여성주의의 모든 활동은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이라는 것.


마을에서 성차별 성폭력 피해경험을 말하는 일은 당사자들이 모두 참여할 것을 전제함으로써 더 깊은 울림이 있다. 특히 이번 행사는 실상사에서, 실상사와 함께 했으므로 그 자체로도 ‘우리는 성평등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마을’이라는 메시지를 모두가 품었으리라. 마을의 어른격인 실상사가 공간과 마음을 열어주어 고마운 마음이다.


말하기 행사 이후, 그동안 동네 술자리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농담으로 흥을 돋우곤 했던 남성들이 ‘이제 그런 일을 하면 안 되겠다’면서 동시에 ‘하도 습관으로 굳어져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다.


그날의 말하기를 통해 우리의 익숙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에 균열이 생기고 너와 내가 조금이라도 더 진실되게 만나고 있다면, 더 나은 공동체를 위해 낯선 불편함을 느끼며 사유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의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너무도 많이 부족하다. 어쩌면 죽는 순간까지 기를 쓰고 노력해도 이슬 한 방울만큼의 변화라도 만들어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멈출 수도, 돌아갈 수도 없다. 여성주의는 행동하지 않을 수 없는 앎이기 때문이다. (김경림)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탈코르셋’, 다양한 해방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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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메이크업, 찌찌해방…‘#탈코르셋’ 침묵을 깬 여성들

다큐멘터리 영화 <임브레이스>와 <바디토크> 이야기



‘여성과 남성이 반반인 이 세상에서 싸우지 말고 조화롭게 잘 살아보자’는 식의 말을 들을 때 종종 떠오르는 숫자들이 있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피해자 98.4%가 여성(김현아 변호사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 실태 및 판례 분석’ 참조)인 것이나, 6.13 지방선거의 17개 전국 시도 광역단체장 후보 중 여성 비율이 8%인 것과 같이 매우 젠더 불균형한 숫자들 말이다. 거기에는 거식증 및 폭식 후 토하기를 반복하는 섭식장애 환자의 90%가 여성이라는 숫자도 포함된다.


음식을 거부하거나 갑자기 한 번에 많은 음식을 섭취하는 등의 섭식장애를 앓는 사람 중 여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는 뭘까?


SNS에서 ‘#학생이_겪는_코르셋’을 검색해 보면 중고등학교 아니라 초등학교 때부터 여성들이 ‘군살 없이 날씬한 몸과 메이크업한 예쁜 얼굴의 기준’에 도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쏟고 있으며 자신의 얼굴과 몸 이미지를 검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냥 여자들이 예뻐 보이고 싶어서 하는 거 아냐?’라고 무심히 지나가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 불균형하고 또한 불합리하다. 화장을 안 했다는 이유로 ‘어디 아프냐?’는 말을 듣는 정도는 양호한 편이라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여성들은 학교, 직장, 사회 그리고 심지어 집에서도 ‘여성이 갖춰야 하는 미(美)와 여성스러움’을 강요 받고 있다.


특히 십대들이 겪는 외모 스트레스가 심각해졌다. 예전엔 ‘대학 가면 이뻐진다더라, 살 빠진다더라’는 말들이 여성청소년들에게 외모보다는 공부에 집중하게 만드는 수단이 되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학생이_겪는_코르셋’을 외쳐야 할 만큼 말이다.


여성들의 부정적 몸 이미지는 미디어가 조장한 것


▶ 타린이 만든 ‘비포/애프터’ 사진은 생각보다 많은 반향을 이끌고 왔다 (출처: <임브레이스> 장면 중)


다큐멘터리 영화 <임브레이스>(Embrace, 타린 브럼핏 감독, 2016년)는 타린 브럼핏이 자신의 ‘비포/애프터’ 사진을 올리고 난 후 일어난 격정적 반응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한다. 그 사진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비포/애프터’ 이미지가 아니라, 타린이 출산 후 변해버린 몸에 대해 자책하다가 바디 빌더(body-builder) 대회에 나가기 위해 열심히 운동한 결과가 ‘비포’이고 현재 자신의 몸이 ‘애프터’였다.


타린은 목표를 이루고 대회에 나갔음에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 하나를 위해 너무나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 부었고, 대회에 나온 멋진 몸매를 가진 여성들이 서로 ‘난 아직 안 예뻐. 여긴 더 빼야 해’ 라는 말을 나누는 모습을 보고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낀 거다.


운동에만 매달리던 생활에서 벗어나 적당히 운동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가족들과 편안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 만들어진 몸인 ‘애프터’ 사진을 본 사람들 중엔 인신공격성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타린의 용기에 감흥을 받은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댓글, 메시지, 이메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던 타린은 왜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그동안 진짜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미워했는지 알아내고자 움직인다.


타린이 호주에서 만난 코스모폴리탄 편집장 미아 프리드만(Mia Freedman)는 “어린 시절부터 여성들의 이야기가 담긴 잡지를 너무 좋아했지만, 거기에 나오는 여성들이 자신과 다르며 그들에 비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랄 수밖에 없었다”고 밝힌다. 그래서 자신이 이 잡지의 편집장이 되었을 때, 다이어트 지면을 없애고 ‘다양한 피부색, 몸매, 얼굴의 모델’을 보여주고자 했다.


하지만 충격적이게도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화보를 찍는다고 하니 디자이너들이 옷을 제공해 주지 않았다. ‘큰 사이즈 옷’이라고 인식되기 싫다는 이유였다. 응당 실리는 사진작가,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이름도 화보에 실리지 않았다. 자기들의 이름을 빼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호주 여성의 ‘평균’ 신체 사이즈와 같은 사이즈임에도 오히려 키가 큰 모델 스테파니아 페라리오(Stefania Ferrario)는 모델 업계에 진입하기 어려웠을 뿐만 아니라 ‘플러스 사이즈’ 모델로 활동할 수밖에 없다. ‘평균’이 ‘플러스 사이즈’가 되는 이 상황이 놀랍냐고? 아니, 사실 놀랍지 않다. 사회와 미디어로부터 ‘자신이 과하거나 부족하다’는 부정적 메시지를 주입 받는 여성들에게 이미 그것은 현실이기 때문이다.


▶ 스테파니아가 길에서 당당하게 워킹을 하고 있는 모습. (출처: <임브레이스> 장면 중)


영화에 등장하는 마리카 티거만(Marika Tggemann) 교수는 “풍만한 몸매가 미의 기준이었던 피지에 TV가 보급된 이후,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마른 몸이 유행하고 섭식장애가 발견되었던 사실을 지적하며 미디어의 영향이 막대하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이 마른 몸에 예쁜 화장을 하고 짧은 교복 치마를 입고 무해한 얼굴로 TV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에 나오고, 유튜브에서 ‘초등학생’이라는 단어를 검색했을 때 ‘다이어트’와 ‘메이크업’이 연관 검색어로 뜨는 지금의 상황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여성들이 ‘자신을 향한 부정적 바디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만든다.


유방을 둘러싼 터부, ‘그게 뭐라고’


또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이자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공개된 <바디토크>(Body Talk, 천 신징 감독, 2018년)는 30여명의 대만 여성들이 자신이 몸과 관련해서 2차성징, 월경, 출산, 질병과 장애, 성적 대상화, 자위 등에 대해 터놓고 말한다.


천 신징 감독은 영화가 끝나고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어느 만화를 본 게 계기였다”고 했다. 여성이 주인공이었는데 어느 날 일어났을 때 가슴이 사라졌고, 그러자 가족과 주변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거다. 단지 가슴이 없어졌다는 이유로 말이다. 감독은 “그 때부터 여성의 몸에 대한 질문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중에서도 ‘가슴’과 관련된 사연을 말하는 이들이 나온다. 어렸을 때 민소매 상의를 입는 걸 좋아했는데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이 ‘쟤 엄마는 속옷도 안 챙겨주고…’ 등의 말을 소곤거리는 걸 듣고 그 뒤로 민소매를 못 입게 되었다거나,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가슴이 나오기 시작해서 그게 너무 싫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평평했던 가슴이 조금이라도 솟아 오른 후부터 그러니까 ‘여성’이라고 하는 몸의 형태를 띠기 시작하면서 온갖 제약들이 등장했다. 브래지어 끈이라도 보이면 ‘여자가 칠칠맞지 못하게…’라는 훈계를 들어야 하고(그래서 투명 끈을 따로 사서 한 적도 있다), 가슴골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시선 혹은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


얼마 전, SNS에서는 모 학교의 ‘검은색 브래지어를 금지한다’는 속옷 규제에 대해 학생들이 항의 목소리를 내었을 정도로, 가슴은 그 자체뿐 아니라 속옷까지 규제 당하는 신성하고도 문란한 몸의 부분으로 취급된다.


지난 5월 26일 열린 월경페스티벌에서 ‘찌찌해방’ 퍼포먼스를 한 불꽃페미액션의 사진 포스팅이 페이스북에서 삭제된 사건이 있었고, 그에 항의하기 위해 해당 단체 여성들은 6월 2일 페이스북코리아 본사 앞에서 다시 한 번 퍼포먼스를 벌였다. ‘공연음란죄’에 해당될지 모른다며 퍼포먼스를 말린 경찰의 행동도 의아했지만, 언론 보도 이후 퍼포먼스 사진에 달린 댓글들도 ‘감히 여자가 가슴을 내보이다니’라는 격분부터 가슴을 품평하는 성희롱과 인신공격까지, 가히 놀라울 정도였다.


<임브레이스>에선 ‘나체 수영’을 하는 행사에 초대 받은 타린이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고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수영을 시작하기 전 나체로 해변에 서 있는데 옆에 있던 여성이 밝고 큰 목소리로 “저기 나처럼 가슴이 하나뿐인 여자가 있네” 라고 외친 후 그 여성에게 다가가서 껴안았다는 거다. 두 여성 중 한 명과 인터뷰 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 여성은 올해 40살이 되었고 “자신을 받아들이는(embrace) 좋은 기회라서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남편의 말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뭐 어때, 그냥 가슴인데.”


그래, 가슴. 두 개였다가 하나가 될 수도 있는 우리 몸의 일부분이라는 거다. 품평해도 되는 물건이 아니고, 음란물도 아니다.


‘탈코르셋’, 다양한 해방의 시작


▶ 다큐멘터리 영화 <바디토크>(Body Talk, 천 신징 감독, 2018년)에 등장하는 인터뷰이


<바디토크>에는 다양한 인터뷰이가 나오지만 스크린에 좀 더 자주 등장하는 여성이 있다. 풍만한 몸을 가진 이 여성은 뷰티(메이크업) 인터넷방송을 하는데, 라이브에 참여한 사람들로부터 ‘멋있어요~’라는 응원과 ‘뚱보가 어디서 나대냐’는 공격을 둘 다 받는다. 이 여성은 누드모델로도 활동하는데 인터뷰에서 “뚱뚱한 몸에도 성적 요소가 있을 수 있다”며 “성적 요소를 찾고 싶다면 찾아보라”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비튼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과 매일 싸우면서 자신을 드러내며 당당히 살아가고 있지만 “제 안엔 괴물이 있어요.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라며 내적으론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이는 그는, 그래도 “번데기가 나비가 되는 과정은 아름다워지기 때문이 아니라 날기 위해서잖아요” 라고 말한다. 그는 탈코르셋에 성공한 걸까, 아님 아직 진한 화장을 하며 거리로 나서니까 아닌 걸까?


물론 노메이크업, 노브라, 노다이어트 등의 행위를 실천하는 것은 중요하다. 미국의 유명 가수인 알리시아 키스(Alicia Keys)는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무대 및 다양한 행사에 서는 행위를 2016년부터 해 오고 있다. 화려한 시상식과 무대에서 화장하지 않은 여성이 말하고 노래하는 모습을 목격함으로써 대중들이 ‘화장을 꼭 안 해도 되는 거였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는 점에서 ‘보여짐’의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실천에 연대할 때 사회적 영향력도 더 커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과정일 것이다. 나의 어떤 모습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방법 말이다.


‘탈코르셋’이라고 부르는 행위/운동을 단순히 노메이크업, 노브라, 노다이어트라고만 생각하지는 않는다. 궁극적으로 그러한 액션의 목표가 사회가 규정하는 일방적인 이미지에 저항하고, 그것을 거부하며 각 개인이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숏커트를 하고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가슴의 형태가 드러나지 않는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다녔을 때에도 ‘여자야 남자야?’라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받지 않고 그냥 ‘나’로 있을 수 있을 수 있어야 하니까.


▶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임브레이스>의 등급은 놀랍게도 ‘청소년 관람불가’다. 여성 성기 사진이 나와서일까? 하나 밖에 없는 가슴을 노출했기 때문일까? 다양한 몸의 여성들이 누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와서일까? 우리 딸은 내가 겪은 그 고통을 겪지 않고 자기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타린의 말이 무색해지는 현실이다. (출처: 넷플릭스 홈페이지)


얼굴/몸과 관련된 이미지에 대한 편견과 금기에 대해 해야 할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이쁜이 수술’이라 불리는 여성 성기의 모습을 일반화하는 의료 행위나, 더 심각하게는 여성할례와 같이 잔혹한 행위도 있다. 여전히 지금도 구두를 신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백화점 서비스직 노동자들은 사회가 규정한 여성노동자의 이미지를 강요받고 있다.


<바디토크>의 천 신징 감독은 “인터뷰이들이 영화를 보고 나서 어떤 반응을 보였냐”는 질문에 “한번 다같이 모여서 편집본을 봤는데 인터뷰이 중엔 ‘나는 저 사람이 한 얘기 못했다, 나도 저 얘기 하고 싶다’라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고 했다. 그리고 “한 사람 당 거의 2~3시간씩 인터뷰를 했는데 영화에선 몇 마디밖에 쓸 수 없다는 점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여성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무 많다. 더 많은 여성들이 어떤 제약이나 규제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마음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뱉어내고 서로 공유하면서 함께 부정적 바디 이미지를 깰 수 있도록 서로를 응원하고 행동에 나설 수 있는 힘을 길렀으면 좋겠다.


오늘부터 친구든 가족이든 누구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붙잡고 ‘바디토크’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사회가 그동안 금기시하며 알려주지 않았던 그 문 앞에서 침묵을 깨고 소리를 내는 거다. ‘이제 이 문을 내가 열 거니까, 부숴버리기 전에 열쇠를 내어 놓으라’고 말이다. 아름다운 내 몸을 통제하고 선택할 수 있는 건 나다. (박주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도망은 ‘도망이나 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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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은 ‘도망이나 치는 것’일까?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나를 지키기 위한 신중한 선택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무조건 도망가라”는 말


“무조건 도망가라”, “괜한 행동하다 다친다. 도망이나 쳐라.” 자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흔히 듣게 되는 말이다. 그러나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거나, 심지어 위험한 말이다.


셀프 디펜스(Self-Defense)에서 도망은 중요하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란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삼십육계>는 <손자병법>보다 먼저 나온 병법이자, 전쟁에서 쓸 서른여섯 가지 계책이란 뜻이다. 그 중에서 서른여섯 번째 계책이 바로 도망가는 것이다.


그러나 폐쇄된 공간이나 금방 붙잡힐만한 위치에 있다면, 어떻게 도망칠 수 있나? 무엇보다 도망이 셀프 디펜스의 유일한 방법이 되면, 그 방법을 사용할 수 없을 때는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결론만 남는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도망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 그 판단과 선택은 상황에 따라 자신의 안전 확률을 높이는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 회피, 탈출, 피신


무능력한 게 아니다, 주체적이고 신중하게


여성 셀프 디펜스 교육을 하면 “괜한 행동하다 다친다. 도망이나 쳐라”는 말에 여성들이 꽤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 영향은 흔히 두려움과 걱정으로 나타나고, 때로 좌절과 분노로 표현된다.


위험상황, 폭력상황은 모면하고 회피하는 게 가장 좋다. 싸움이나 저항이 아니라 회피가 최고의 미덕이다. 그러나 회피를 위해서도 간단하고 분명한 말로 의사 표현하기, 손을 사용하며 자세를 취하기, 거리와 각도 상으로 멀어지기 등 말과 행동이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진짜 방어와 반격은 거의 모면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필요하다.


어떤 도망인지도 중요하다. 폭력상황에 처한 A와 B가 있다. A는 이 상황에서 도망치는 것 외에 자신이 아는 것이나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도망쳤다. B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알고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도망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하고 도망쳤다.


A와 B는 모두 도망쳤지만 B는 A보다 도망쳤다는 사실 때문에 좌절감을 느낄 가능성이 매우 낮을 것이다. 반면에 A는 B보다 폭력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커질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망’이란 말에서 비겁하거나 부끄러운 행동 또는 무능력을 연상한다. 그러니 ‘회피’, ‘탈출’, ‘피신’이란 말로 바꿔 써보자.


폭력상황을 회피하기, 위험상황에서 탈출하기,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기는 무능력한 행동이 아니다.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전술적인 행동이다.


셀프 디펜스는 단지 육체적으로만 자신을 지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경우 정신적으로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다. 주체적인 판단, 결정, 행동이 분명히 훨씬 더 긍정적이다.


▶ 무능력한 행동이 아니라 전술적인 행동  ⓒ스쿨오브무브먼트


안전하게 상황 종료하기


위험상황이나 폭력상황을 애초에 모면하고 회피했든, 아니면 방어하고 반격했든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야 상황이 종료되는 것이다.


그런데 폭력상황에서 피신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이동하는 것과 많이 다르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은 순간 얼어붙는다. 심지어 생각과 몸이 굳어버려 꼼짝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도망은 그냥 도망이나 치는 게 아니다. 연습이 필요한 셀프 디펜스의 중요한 테크닉이다.


강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감각의 왜곡이 일어날 수 있다. 시각이 왜곡되거나 청각이 왜곡될 수 있다. 시야가 매우 좁아져 두루마리 휴지심 만한 작은 구멍으로 사물을 보는 것처럼 되거나, 주변 소리나 자동차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여러 요소들, 즉 공격자, 공범, 무기, 어린이나 가족, 친구, 조력자, 소지품, 통로, 자동차, 찻길, 막다른 길 등을 두루 살펴 확인하고, 피신해야 한다.


▶ 연습은 일종의 예방접종  ⓒ스쿨오브무브먼트


망치, 드라이버, 펜치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일


셀프 디펜스 교육은 사람들에게 망치, 드라이버, 펜치의 사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망치, 드라이버, 펜치라는 기본적인 셀프 디펜스 능력을 갖고 있지만 사용법을 모르거나 써본 적이 없다. 사용법을 알게 되고 연습을 해보면, 나사를 조이거나 못을 박는 일쯤은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은 그만큼 편리해질 것이다.


아는 것의 힘은 강하다. 그래서 우리는 폭력에 대해 알아야 한다. 알지 못할수록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습이 필요하다. 문제 상황을 설정하고 해결 과정을 연습해보는 것은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다. 물론, 병원에서 주사를 맞는 것보다 확실히 유쾌한 경험일 것이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그녀들의 사정

“불임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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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가르쳐야 한다

발생생물학자 클라라 핀토 코레이어 인터뷰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올해 3월, 도쿄에서 생식기술에 관한 심포지엄 ‘리프로덕티브 바이오테크놀로지-새 시대의 과학과 사회’(총합연구대학원대학 ‘과학과 사회’ 분야 외 공동 주최)가 개최됐다. 여기에 강연자로 참석한 클라라 핀토 코레이어(Clara Pinto-Correia) 씨는 포르투갈의 저명한 발생생물학자로, 펜트 다 로차 카브랄 과학연구소 시니어연구원이다.


“성공률이 낮은 체외수정에 실패해도 여성들은 자기 탓이라는 생각 때문에 불임치료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전 세계 공통적인 이 악순환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라고 열띠게 이야기하는 클라라 씨에게 좀 더 상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인터뷰 협력: 총합연구대학원 미즈시마 노조미)


불임치료를 하는 여성들이 겪는 우울과 고통


클라라 씨는 1960년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이 식민지 전쟁을 하던 어린 시절을 아프리카 남서부의 앙골라에서 지냈다. 풍요로운 자연환경 속에서 생물들에 대한 열정이 생겨나 리스본대학 의학부에서 생물학을 전공,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하버드대학에서 전문 교수에게 지도를 받으며 발생학사 연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포르투갈과 미국의 유명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왔다.


이것만으로도 그럴듯한 직함인데, 클라라 씨는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저널리스트, 소설·아동문학·에세이·시를 쓰는 작가이며, 지금까지 펴 낸 책도 50권 이상이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방송의 진행도 하는 등 그 다재다능함에 놀라게 된다.


▶ ‘모든 인간에게 생식능력이 있는 건 아니다. 불임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성교육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발생생물학자 클라라 핀토 코레이어 씨. (페민 제공 사진)


생식기술이나 불임에 관한 저작도 있고, 불임으로 고민하는 커플을 위한 핫라인을 운영하고 관련 행사를 여는 등의 활동도 20년 넘게 하고 있다. 클라라 씨 자신도 불임 경험자다.


“체외수정을 5번 받았는데, 잘 되지 않아서 심각한 우울증에 빠져 자살을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통계는 없지만, 불임치료를 하는 여성이 약의 영향도 있지만, 자기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은 많습니다.”


깊은 공허함이 엄습한 지 1년 후, 클라라 씨는 6살 7살짜리 남자아이 둘을 입양했다.


“그 아이들이 집에 들어온 순간, 제 마음은 충만해졌습니다. 일주일 정도 지난 후에는 ‘지금까지 왜 그렇게 슬퍼했던 거지?’라는 느낌이 들더니 생물학적인 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어요.”


하지만, 육아는 녹록치 않았다. 미국인 남편은 포르투갈어를 하지 못해 부부 간 소통의 문제로 결혼생활은 파탄 났다. 2년 후에 이혼. 혼자서 아이들을 키웠다.


“거리의 아이들이었던 두 아이는 굉장히 복잡한 사춘기를 맞이했고, 제 인생을 무너뜨릴 만큼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24살, 25살 청년이 되었고, 곧 제게 네 번째 손자가 생깁니다. 그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실이 더할 나위 없는 행복합니다.”


출산이나 결혼이 당연하다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져야


불임인 사람들을 위한 활동은 자신도 고통스러웠던 시기에 시작했다. 지인인 가수와 심리학자 친구와 함께, 불임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기운을 북돋우기 위한 행사를 기획했고 그것이 핫라인 개설로 이어졌다.


불임에 직면하면 많은 사람은 대참사를 만났다고 생각할 정도로 큰 비극을 느낀다. 그럴 때 전화로 상담할 수 있는 핫라인의 존재는 크다. 때때로 미팅도 열린다.


“서로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 자신의 경험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아이나 남편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는 가치관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핫라인을 통해 만난 사람들은 기운을 차린 후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지금 핫라인은 포르투갈 각지로 퍼져있다.


클라라 씨는 불임커플의 남성 모임도 20년 동안 해오고 있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여성들은 개방적이라 모임에서 나온 얘기를 다른 곳에 가서 활용하거나 하는데, 남성들은 술에 취해야 간신히 이야기를 꺼내는 데다, 다른 데 가서 ‘절대 말하지 말라’고. 지금도 저한테 ‘비밀유지 맹세’를 받아요(웃음).”


불임은 치료해야 할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니다


생식기술은 유용한 기술인 한편, 돈 되는 비즈니스라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 대리출산이나 정자·난자 제공을 포함한 생식기술에는 인권이나 경제적 격차 등 내포된 문제도 산더미다.


“저소득 커플이 차랑 집까지 팔아 비싼 불임치료를 받고 싶다는 상담을 하는데, 그렇게 필사적인 그들에게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 아니다’라고 말 못하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사회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통계로는 유럽의 열 커플 중 한 커플이 불임이에요. 모든 인간에게 생식능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불임은 치료해야 할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닙니다. 불임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성교육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이렇게까지 괴로워할 일은 사라지겠죠.”


포르투갈도 일본이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입양을 선택하는 사람의 수는 적다. 클라라 씨는 동성애자 커플이 입양할 수 있도록 유명한 게이커플과 함께 운동을 펼쳐 제도를 바꾸었다.


“이성애자 커플이나 생물학적인 부모는 완벽하고, 동성애자는 안 된다는 기준 자체가 어리석죠.”


페미니즘이 클라라 씨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는지 물어봤다.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여성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목소리를 내겠냐는 거예요.”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구리하라 준코님이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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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에 가다

[Let's Talk about Sexuality] 나의 성적 기호와 섹스 플레이 (칠월)


※ <일다>는 여성들의 새로운 성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20인의 여성이 몸과 성과 관계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과 경험을 담은 “Let's Talk about Sexuality”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나는 BDSM(Bondage Discipline Sadism Masochism, 사람들의 성적 기호 중에서 지배와 속박, 가학과 피학 성향 등을 통칭) 성향자이며, 페미니스트다. 하지만 어떤 이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성적 기호 때문에 나는 페미니스트를 자처할 수 없으며 심지어 여성혐오자로 불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섹스 안팎에서 가학/피학 행위를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억압을 승인하고 재생산하는 것일까?


지금 나는 ‘남성’과 섹스도, 플레이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있다. 내가 실천하는 여성 간의 BDSM 섹스는 이성애 플레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가? 그렇다면 여성 간의 플레이는 반(反)페미니즘적이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잘 모르겠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나의 젠더 표현, 레즈비언 정체성, BDSM 성향 등의 ‘원인’이나 그 정치적 효과를 정의하거나 명확한 언어로 설명할 수 없다. 연달아 떠오르는 수많은 질문과 논쟁에 대해 대답하기 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저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 호주 브리즈번에서 활동하는 퀴어 포토그래퍼 Tristan Peter가 호주 잡지에 싣기 위해 작업했던 돔&섭 컨셉 화보의 일부. (ⓒ포토그래퍼: 트리스탄 피터, 모델: 칠월, 소이)


한국에서 레즈비언 BDSM 파트너를 찾는다는 건


내가 에세머(smer), 정확히는 섭 스팽키(성행위를 할 때 엉덩이나 허벅지 등을 맞는 것을 즐기는 사람)로 정체화한 시기는 언제인지 정확하지 않다. 여성과 섹스를 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거친’ 섹스를 좋아하는 취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금 나아가 머리채를 잡히거나, 수갑 등으로 결박당하거나, 엉덩이를 맞는 것을 즐긴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다.


사실 이 정도 수위는 에세머들이 말하는 ‘바닐라’(BDSM 성향이 없는 일반인)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섹스 상대에게 위의 행위들을 요구하면 거부감을 가지곤 했기 때문에, 차라리 스스로를 에세머로 규정하고서 파트너를 찾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레즈비언이 (섹스를 동반한) 플레이 파트너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엔 크게 두 개의 BDSM 성향자 웹사이트가 있는데, 내가 원하는 부치-스팽커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끔 ‘구인’ 글을 올리면 쪽지함은 돔/섭 성향을 가리지 않고 남자들의 플러팅으로 가득 찼다.


자신의 여성 섭 혹은 돔과 내가 플레이하는 것을 ‘관전’하게 해달라는 제안이 여럿이었고, 그렇게 해준다면 금전적으로 보상하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몇 번의 불쾌한 경험을 한 끝에, 나는 한국에서 레즈비언 BDSM 파트너를 찾는 일을 잠정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스웻’ 초청장 받기


지난 2016년 5월, 나는 서유럽 퀴어-BDSM-페미니스트 투어를 다녀왔다. 그런 여행상품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내가 직접 유럽의 퀴어 퍼레이드와 BDSM 워크샵, 퀴어 전용 술집과 서점들을 알아보고 날짜를 맞추어 일정을 계획했다. 브뤼셀 퀴어퍼레이드, 암스테르담의 BDSM 워크샵과 파티, 베를린, 런던, 파리, 바르셀로나의 레즈비언 펍과 페미니스트&퀴어 서점들을 방문했다.


▶ 2016년 벨기에 퀴어퍼레이드 현장  ⓒ칠월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벤트는 런던의 퀴어여성 전용 BDSM 파티 SWEAT(이하 ‘스웻’)에 참석하는 것이었다. 여성전용 ‘찜방’, 게다가 SM까지 할 수 있는 사우나라니, 딴 나라 얘기를 책으로만 읽다가 실제로 가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꿈만 같은 일이었다.


SWEAT(sweat-london.co.uk)에 대해 알게 된 건, 런던 페티쉬 씬(londonfetishscene.com) 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여행 전에 BDSM/페티쉬 사이트인 펫라이프닷컴(fetlife.com)에서 도시별로 내가 머무는 날짜에 열리는 행사를 검색했는데, 런던에서 스웻을 한다는 걸 알고는 외칠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돼!!


▶ 런던 페티쉬 씬 홈페이지 (출처: londonfetishscene.com)


스웻은 세 명의 퀴어여성 오거나이저가 운영하며 여성퀴어를 대상으로 열리는 비정기 행사다. 미리 등록된 메일링리스트에 초대장이 돌고, 우리로 치면 인터파크 같은 사이트에서 예매를 한 후 자세한 장소를 안내받는다. 나는 행사를 알게 된 후 메일을 보내서 리스트에 초대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가입하기 위해 몇 가지 질문에 답해야 했다.


“당신을 스웻 메일링리스트에 추가하고 다가오는 행사 알림 메일을 보내기 위해, 우리는 몇 가지 검증 절차를 거칩니다. 이것은 우리와 당신을 보호하는 조치이므로 양해 부탁드립니다. 이 절차는 가능한 빨리 처리됩니다.


-스웻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이전에 비슷한 행사(예를 들어 섹스와 BDSM을 위한 공간)에 참여한 경험이 있나요? 반드시 경험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음!


-마지막이자 가장 중요한 질문. 스웻은 여성 혹은 트랜스* 스펙트럼으로 정체화하는 이들을 위한 섹스 및 BDSM 플레이 공간입니다. 당신이 그런 정체성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해 주세요.”


답장을 보냈고, 곧 초대장을 받았다. 주의 사항이 포함된, 엄청 길고 딱딱한 메일이었다. 대문자 MUST(~해야 한다)가 난무했는데, 의상이나 에티켓 등을 안내하는 이 메일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다. 입장료는 15파운드에 예약 수수료 2파운드를 더해 약 3만원.


오리엔테이션과 대화, 합의의 과정을 거치고


행사는 저녁 8시부터였는데, 처음 오는 사람은 7시 30분까지 와서 오리엔테이션을 들으라고 했다. 나는 오전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와 목욕재개하고 란제리와 가죽바지를 입고 지하철을 탔다. 엄청 외곽에 있는 개인집일줄 알았는데, 킹스크로스 역에서 지하철로 고작 10분. 장소는 놀랍게도 시내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아마도) 게이 찜방이었다. 입장하면서 라커 키와 타월을 받았다. 쿠키와 홍차가 무료로 제공된다.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술이나 마약에 취해있지 않으며 룰을 지키겠다는 확인서에 서명을 하고 장소를 안내받았다. 한쪽에는 사우나, 샤워실이 있었고, 가운데는 공개 플레이를 위한 넓은 침대 하나, 문을 잠글 수 있는 작은 방들이 여럿 있었다. 공중그네의자가 천정에 매달려 있는 방 등 방마다 테마가 다양했다. 프라이빗 섹스를 위해 준비된 이런 방들을 ‘다크 룸’이라고 부른다.


▶ 암스테르담 BDSM 주간의 본디지 워크샵 모습  ⓒ칠월


8시가 지나자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왔다. 총 30명 정도였는데, 다양한 체형과 다양한 성별 표현, 다양한 복장을 하고 있었지만 라틴계나 아프리카계 등은 없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백인이었다. 라커룸에서 옷을 갈아입는데 복장은 자유, 대부분 비키니나 란제리를 입었거나 팬티만 입은 상체 노출. 영화 <용 문신을 한 소녀>(The Girl With The Dragon Tattoo, 데이빗 핀처, 2011)의 리스베트 같은 옷을 입은 언니도 있었고, 모자부터 구두까지 완벽한 경찰 복장을 한 언니도 있었다. 피어싱과 타투를 한 언니들이 참 많았다.


재미있는 것은, 팸들은 수영복이나 란제리를 입고 아무것도 손에 든 것이 없는데, 부치들은 거의 복장을 갖춰 입은 데다 장비가방(?)을 철컹거리며 들고 다닌다는 것. 안에는 딜도나 각종 토이가 들어 있는 듯. 플레이를 하기 전에 커다란 가방을 뙇 내려놓고 채찍, 패들, 회초리, 까칠장갑 등 토이들을 하나하나 꺼내 소중하게 펼쳐놓는 것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참가자들이 모두 모여 10분 정도 아이스브레이킹을 했다. 2분마다 상대를 바꿔 가며 대화를 하는 거였다. 아이스브레이킹 후에는 자유시간인데, 상상했던 것처럼 바로 난교가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야동을 너무 봤나 보다) 다들 사우나와 스파에 몰려가서 수다를 떨었다. 스파에 자리가 없었다. 대화를 하면서 취향이 맞는 상대를 찾으면 함께 샤워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역시 섹스와 BDSM 플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 플레이 수위의 조율과 이에 대한 명시적 합의를 하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것


몇 명과 대화를 나누다 사우나 밖에서 찰싹찰싹 소리가 들리길래 나가봤더니, 스팽킹 플레이가 펼쳐지고 있었다. 스팽커의 손길은 능숙했다. 스팽키를 무릎 위로 엎드리게 하고, 손바닥으로 양쪽 엉덩이를 번갈아 때렸다. 손바닥이 엉덩이에 닿는 순간 절도 있게 멈추는 찰진 스냅이었다. 강도가 점점 높아지는가 싶다가 어느 순간 약하게 때리기도 하고, 중간 중간 스팽키에게 괜찮냐고 계속해서 확인하곤 했다. 도구를 바꿔가며 엉덩이를 때리다가 둘이 무슨 대화를 하더니, 스팽키가 일어나 무릎을 꿇고 서서 양 손으로 벽을 짚었다.


스팽커는 여러 갈래의 가죽 채찍을 꺼내 들었고, 이번엔 엉덩이가 아니라 등을 때리기 시작했다. 스팽키의 온 몸이 꿈틀거렸다. 관전을 하다 보니 나도 흥분해서 스팽커에게 플레이를 요청했다. 약 5분 정도(짧은 것 같지만 굉장히 긴 시간이다) 플레이를 한 후 이만하면 됐다고 하고 마쳤다.


▶ 스웻 워크샵에서의 스팽킹 플레이의 흔적  ⓒ칠월


아직 경험이 없는 본디지 플레이(밧줄이나 사슬로 몸을 묶는 것)도 해 보고 싶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사실 스팽킹으로도 충분했다. 숙달된 마스터의 손길은 그 자체로 너무나 섹시했다. 플레이가 끝난 후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며 포옹을 나눴다. 여성퀴어 전문가와, 정확히 내가 원하는 플레이를,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요원한 일이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섹스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다크 룸은 만실이었고, 중앙 침대가 비좁아졌다. 경찰 옷을 입은 언니는 벽에 서서 조교 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더 보고 싶은 장면이 많았지만 지하철 시간 때문에 10시 반쯤 일어나야 했다.(행사는 자정까지 열렸다) 몇몇 사람과 펫라이프닷컴 친구를 맺고, 샤워를 한 후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숙소에 돌아오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엉덩이가 기분 좋게 아렸다. 여행 내내, 나는 붉은 멍이 차차 보라색으로, 노란색으로, 살색으로 변하는 것을 보며 그 날을 추억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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